HOME >> 문화 2003.02.06. 1740호
[스타클릭] 나는 머시마 같은 ‘낭만 고양이’ 체리필터
10분 만에 만든 곡 ‘낭만 고양이’로 스타 변신

두 눈 밤이면 별이 되지/나의 집은 뒷골목/달과 별이 뜨지요/두 번 다시 생선가게 털지 않아/서럽게 울던 날들/나는 외톨이라네/이젠 바다로 떠날 거예요/거미로 그물 쳐서 물고기 잡으러!/나는 낭만 고양이/슬픈 도시를 비춰 춤추는 작은 별빛/나는 낭만 고양이/홀로 떠나가버린 깊고 슬픈 나의 바다여’(‘낭만 고양이’ 중에서)

다른 가사는 기억 나지 않아도 “나는 낭만 고양이”라고 시원하게 외치는 여성 보컬의 목소리는 귀에 익숙할 것이다. 이 곡은 잘 알려진 대로 혼성4인조 록그룹 ‘체리필터’의 ‘낭만 고양이’. 보컬은 만화 속 주인공 같은 외모를 가진 ‘홍일점’ 조유진(26)이 맡았다. 팀 리더이자 기타리스트는 정우진(27), 베이스에 연윤근(27), 드럼과 랩은 손상혁(26).

기자와 인터뷰를 한 1월 20일은 ‘체리필터’에게 아주 특별한 날이었다. 이날은 ‘체리필터’가 6년 전 언더그라운드 그룹으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던 장소인 신촌 ‘롤링 스톤즈’ 무대에 다시 서는 날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고향에 ‘금의환향’하는 날이라고나 할까.

‘체리필터’가 리허설을 하고 있는 ‘롤링 스톤즈’ 실내에 들어서자 엄청난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비좁은 공간에서 울려퍼지는 파워풀한 연주와 보컬은 기자의 심장박동을 빠르게 만들고 기분을 ‘업’시키기에 충분했다.

리허설을 마친 ‘체리필터’와는 ‘롤링 스톤즈’ 근처 한식집에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각자 기호에 맞게 갈비탕과 육계장을 주문하고 녹음기를 꺼내자 연주자들은 신기하다는 듯이 만지작거렸다. 인상적인 노래솜씨로 남녀노소 불문하고 많은 팬을 확보한 여성보컬 조유진은 조용히 앉아 이를 지켜보았다.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보컬 조유진은 인천 토박이다. 1남1녀 중 막내로 인천에서 태어나 인성초등학교, 북인천여중, 서인천고등학교를 거쳐 상명대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했다.

“학교 다닐 때는 정말 남자애 같았어요. 지금도 걸음걸이는 영락없는 남자죠. 남자 멤버들이 옷 갈아입을 때도 자리를 안 비켜주니까 막 ‘나가라’고 해요. 우린 화장실 따로 쓰는 것 빼고는 남녀 구별없는 친구죠.”

조유진의 아버지는 인천제철 말단부터 시작해서 전무까지 오른 ‘신화적인 인물’이다. 지금은 회사를 나왔지만 아직도 경제적으로는 여유가 있다고 한다.

“그래도 어릴적 체득한 ‘헝그리 정신’은 남아있어요. 옛날엔 집이 너무 가난했거든요. 폐허같은 집을 개조해서 산 적도 있었죠. 그런데 아버지가 열심히 일하셔서 지금은 큰 문제 없어요.”

조유진의 ‘헝그리 정신’은 음악활동을 하면서 빛났다. 지금까지 집에 손 한 번 벌린 적이 없다니 말이다. ‘체리필터’라는 이름과 결성 과정이 궁금해졌다.

“멤버들은 친구 사이로 얽혀 있어요. 정우진과 연윤근은 동네(동부 이촌동) 친구로 유치원(대건 유치원)부터 동창이에요. 정우진(무역학과 3학년)과 손상혁(신문방송학과 4학년)은 고려대 동창이고요. 두 사람은 ‘무단외박’이라는 음악동아리에서 만났죠. 저요? 저는 천리안 채팅으로 손상혁과 만났어요. 세 사람이 보컬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왔거든요. 우리는 종로에서 만나기로 했고 1500원짜리 커피를 마시며 음악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리고는 다음날부터 바로 연습에 들어갔죠.”

1997년부터 신촌 클럽서 연주

1996년 말 만난 네 사람은 1997년부터 신촌의 조그만 클럽에서 연주를 시작했다. ‘롤링 스톤즈’ 무대에 선 것은 1998년부터였다.

“언더그라운드 그룹들이 선망하는 ‘롤링 스톤즈’ 무대에 서는 것도 힘든 일이었어요. 당시 열린 프랑스 월드컵을 함께 보면서 공연을 했던 기억이 나요. ‘체리필터’라는 이름은 연윤근이 지었는데 아무런 뜻 없어요. 그냥 이런저런 단어를 조합하다가 만들었대요.”

2000년 4월에 낸 1집 ‘HEAD-UP’은 별 반응이 없었고 조유진은 일본 유명밴드 ‘루나씨’의 멤버 제이에게 ‘러브콜’을 받아 그곳에 가서 가수활동을 시작했다. ‘체리필터’를 유지하며 ‘외도’를 한 것이다. 2000년 말부터 2001년까지 정규앨범 2장과 싱글 5장을 냈고 일본 오리콘 데일리 차트 14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일본은 언더그라운드 밴드들의 천국이에요. 진지하게 음악을 하는 사람도 많고 자기만의 색깔이 분명한 밴드들이 너무 많아요. 록본기에는 밴드들만 출입하는 클럽이 있어요. 세상을 떠난 ‘X-Japn’의 히데 막내동생이 운영한다고 하더라고요.”

일본에서의 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2002년 1월 ‘체리필터’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린 곡 ‘낭만 고양이’가 탄생했다. 낮잠을 자다 깬 조유진에게 불현듯 8소절의 멜로디가 떠올랐고 비몽사몽간에 전화기를 들었다. 리더 정우진이 전화를 안 받아 휴대폰 음성사서함에 흥얼거렸다. 이들은 그날밤 연습실에 모여 “죽이지 않냐”를 연발하며 10분 만에 ‘낭만 고양이’를 만들었다. 처음 제목은 조유진의 별명인 ‘고양이’였다. 그런데 왠지 심심했다. 당시 이들 사이에는 ‘낭만’이라는 단어가 유행을 탔다. 중국집에 가서 주문할 때도 ‘나는 낭만적인 자장면’ ‘난 낭만적인 짬뽕’이라고 하던 때였다. 그래서 ‘낭만’이라는 단어를 붙여 ‘낭만 고양이’가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거칠고 빠른 모던록풍의 ‘낭만 고양이’가 2002년 8월에 발매된 2집 ‘Made in Korea’에 실렸고 ‘체리필터’를 한반도에 널리 알렸다. 고3일 때도 8시간씩 자던 멤버들은 하루 4시간 자는 데 만족하게 됐고 틈만 나면 하던 컴퓨터게임도 잘 못하고 있다. 그래도 이들은 ‘낭만적으로 살자’고 의기투합한다.

“돈 벌면 악기 사는 데 다 써”

“프로 뮤지션이 되자고 만난 건 아니었거든요. 우리도 밴드 한번 해보자는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한 거니까 낭만을 잃어버려서는 안되겠죠.”

가요계 불황에도 2집 앨범은 20만장 이상이 팔렸다. 전국 투어도 전석 매진이었다.

“번 돈은 악기 사는 데 다 써요. 봉천동에 있는 선배 연습실에서 빨래, 청소 해주고 노래 연습하고, 2002년 초만 해도 지하철 요금이 없어서 걷기도 했는데, 순식간에 달라지니까 신기했죠. 전라도 광주에서 공연할 때는 맨 앞줄 여성팬이 우진이를 보고 막 우는 거예요. 정말 우리가 유명해졌구나라는 것을 실감했죠.”

이들의 파급 효과는 점점 커졌다.

“한나라당측에서 ‘낭만 이회창’이라는 노래를 사용해도 되겠느냐고 하더군요. 거절했죠. 우리는 어떤 도구로 쓰이는 것을 거부한 겁니다. 방송 출연도 부담되는 게 순수하게 음악을 들려주려는 프로그램보다 우스갯소리를 나누는 프로그램이 더 많잖아요.”

연윤근은 미군 장갑차사건과 관련해서 자신의 홈페이지에 미군에게 독설을 퍼부어 화제의 인물이 되기도 했다.

“반미가 아니라 민족의 권리, 자주성을 찾자는 것이었어요. SOFA를 개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돌진하는 미군 차량을 무조건 피해다녀야 합니다.”

예수의 외모를 닮았다고 말해지는 손상혁의 팬클럽 이름은 ‘손스타 진리교’. 집시 같은 외모와는 달리 웃는 모습이 귀엽다.

한 명 한 명 개성이 강한 ‘체리필터’는 음악에 관해서만은 한 목소리를 낸다.

“오늘의 우리를 만든 건 클럽 무대죠. 그 무대가 없었으면 지금의 우리도 없을 거예요. 언더그라운드와 오버그라운드의 구분이 없는 진정한 록문화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미국, 일본으로도 진출하고요. 그리고 낭만을 즐기며 살거예요. 3집도 머리 싸매고 만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즐기면서 곡을 가지고 놀 생각입니다. 요즘에 우리들 사이에서는 ‘개’라는 단어가 유행이니까 3집에는 개가 등장할 것 같은데요.”

◆ 조유진(보컬) △생년월일 1977년 7월 5일 △키·몸무게 163cm·비밀 △학력 상명대 영어교육과 졸업

◆ 연윤근(베이스) △생년월일 1976년 9월 21일 △키·몸무게 180cm·79kg △학력 명지대 연극영화과 졸업

◆ 정우진(기타·리더) △생년월일 1976년 4월 20일 △키·몸무게 174cm·61kg △학력 고려대 무역학과 3학년

◆ 손상혁(드럼) △생년월일 1977년 1월 13일 △키·몸무게 182cm·65kg △학력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서일호 주간조선 기자 ihse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