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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구] 최고령 독립유공자 구익균 옹의 ‘103년 나의 삶’
“내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시절? 광복 직후 상하이서 교민 2000명 고국행 도왔을 때”
일생 동안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언제였습니까.

“상하이에서 국내에 들어왔을 때요. 친척 네 사람이 날 괴롭혔어요. 내가 중간파에 속하다보니 오해를 많이 받았어요. 독립운동만 하지 않고 공산당 운동도 했다고 나를 비방했고 나중에는 예수를 안 믿는다고 날 욕했어요.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날 비방했던 사람들 다 비참하게 죽었어요. 내게 반기 들었던 정치인들도 다 몰락했어요. 허어 참.”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나서 왜 정부에 참여하지 않았습니까.

“이승만이 오라고 했을 때 내가 갔더라면 그 흔한 장관도 주고 했을 거지만. (내가) 이승만을 좋아하지 않아 안 갔어.”

정치에 몸담은 것을 후회하십니까.

“허허, 그렇다고 정치를 안할 수도 없는 거 아니요. 정치와 무관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크게 보면 사람은 정치의 틀 안에서 살게 되어 있으니까. 다만 실력 없는 정치인, 협잡하는 정치인이 더 많다는 게 문제지. 지나고 나서 보니까 누구 좋다 나쁘다고도 할 수 없는 것 같아.”

이렇게 답했을 때 미닫이문 밖에서 “똑똑” 노크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구 옹이 우렁찬 목소리로 “컴 인!”하고 말했다. 40대 여성이 들어오자 구 옹이 취재진에 소개했다.

“보훈처에서 보내주는 분이에요. 운동도 시켜주고 좋은 얘기도 해주는, 거 뭐라 하죠… 도우미예요.”

▲ 구익균 옹의 103세 생일을 축하하는 난과 종이공예 작품.
역대 대통령 중 누굴 만난 적이 있습니까.

“이승만을 만났지. 상하이 교민단장 할 때 장제스 초청으로 왔어. 내가 그때 민단 대표로 인성학교 학생들 데리고 비행장으로 나가 영접했어요. 이승만이 국내에 들어와 나를 찾았지만 내가 가지 않았어.”

박정희 전 대통령과는 만난 일이 없습니까.

“박정희는 만난 일이 없고. 5·16 직후에 김종필이 와서 조병옥, 김재순 등과 함께 혁신계 대표로 나를 영입하고 싶다고 했는데, 거절했어요.”

구 옹은 그 후 ‘용공 인사’로 체포되어 1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옥고를 치른 뒤에는 반박정희 운동 진영에 섰다. 1967년에는 통일사회당을 재창당해 사무총장을 맡기도 했다. 박정희 시대를 평가해달라고 하자 그는 “잘한 것보다 잘못한 게 더 많다”고 잘라 말했다.

민주사회주의를 신봉하며 한반도의 영세 중립국화를 주장하셨는데,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상주의로 흐른 것 아닙니까.

“상하이에서 도산을 만나 그의 평등사상이 나의 사회주의사상과 일치한다는 것을 알았어. 이후 로버트 오언의 유토피아적 인도주의를 받아들여 민주사회주의로 바뀌었지. 1947년 7월, 국내에 돌아와서 이 사상에 입각해 새 나라를 세우는 정치활동을 했지. 1951년 프랑크푸르트 민주사회주의 선언을 접하게 되면서 민주사회주의를 더욱 강화하게 되었어. 한국의 영세(永世)중립화 운동은 이런 사상 위에서 추진했던 거야. 지금도 민주사회주의는 세계에서 가장 열린 사상이라고 확신해.”

김대중 전 대통령은 만난 일이 없었나요.

“김대중과는 교유한 일이 없어. 하지만 내가 이희호를 미국에 (유학) 보내는 데 역할을 했지. 그게 (이희호의) 인생을 바꿔놓았어. 그때 이희호는 계훈제와 사귀고 있을 때였지. 부산까지 기차 타고 함께 가서 부산에서 미국 가는 비행기를 탔지. 밖에서는 강원룡이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내가 한 거야. 지금도 만나면 이희호는 반가워서 두 번 세 번 악수를 하지.”

이희호 여사는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 40대 시절의 구익균 옹.
“강원룡 때문에 알게 되었지. 이희호가 강원룡을 돕고 있었으니까.”

이화여대를 졸업한 이희호는 1954년 미국 램버스대로 유학해 사회학을 공부했고, 스카릿대학에서 사회학 석사학위를 받아 귀국했다. YWCA 총무로 일하던 1962년 첫부인과 사별한 김대중을 만나 결혼했다.

도산 안창호는 어떤 분이었습니까.

“내가 도산을 3년 모셨지. 도산은 내가 감옥에 있을 때 옥바라지도 해줬어. 내가 아는 사람 중 도산이 가장 훌륭해. 도산은 민족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무정부주의를 나누지 않았어. 도산은 사람들은 각기 강점이 있으니 쓰일 데가 있다고 했어. 하나도 흠결이 없는 사람이야. 이광수와 주요한도 자주 만났지. 일본 사람들도 춘원을 숭배했어. 이광수 문학을 좋아했어.”

1930년대 상하이에서도 살아보고 또 미국에서도 20여년 살아보셨습니다. 대한민국의 오늘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많이 발전했어. 내가 뉴욕, 워싱턴, LA 등 미국에서도 안 가본 데가 별로 없어요. 지금 서울은 뉴욕의 가장 화려한 곳에 비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예요. 이명박 대통령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

어떻게 하면 선생님처럼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습니까.

“나는 평생 소식(小食)주의를 지켰어. 소식하면서 바른 생각을 하며 일생을 지내려고 해왔어. 예를 들면 흥사단 활동을 하면서 거짓말을 안하고 충실하게 살아왔어. 안창호 선생의 사고방식을 따라 살아온 거지. 담배 안 피우고 술은 아주 조금만 먹었지, 이 시간까지. 건강을 위해 그렇게 산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건강을 위한 것이 되었어. 담배를 안하고 술을 안 마시니까 경제적으로 이롭고 신체적으로도 건강하지.”

일생 동안 거짓말을 안하고 산다는 게 어렵지 않습니까.

“정말이야, 나는 거짓말을 한번도 안했어. 정치적으로 일관된 노선을 걸었으니까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었지. 또 정직하게 살아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는데 뭣 때문에 거짓말을 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제일 중요한 거, (잠시 생각하다가) 그거 생각하려니까 굉장히 어렵구나. 취미가 없다보니까 사는 재미가 없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굉장히 어려워요. 한 달에 200만~300만원 벌 것을 찾아야 하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밤낮 연구하고 있어. 어젯밤에 잠을 한숨도 못잤어.”

건강하게 오래 사셔서 가장 좋은 점은 뭔가요.

“음, 뭐라 얘기할 수 있을까. 자유의 몸이 됐다는 거지.”

그렇다면 나쁜 점은 뭡니까.

“고적이지. 외롭다는 거. 고독은 말할 수가 없을 만큼 힘들어. 혼자 자고 혼자 깨고. 일하는 사람은 밤에는 집에 가니까.”

돈, 사랑, 가족, 장수 중에서 뭐가 더 중요하다고 봅니까.

“과거엔 오래 사는 것, 경제적으로 유복한 것, 자식이 많으면 제일 잘사는 것이라고들 말했지. 그런데 살아보니까 외로움에는 아무것도 소용없어. 무엇을 어떻게 해야 고독을 면할지 알 수가 없어. 돈만 가지고 되는 것도 아니고….”


/ 조성관 편집위원 mapl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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