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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일 닭을 훔치다? 중국 인터넷서 풍자노래 확산 조롱거리 전락한 북한
‘아아아아아아
김정일 닭을 훔치다
뼈다귀를 먹어봐
XXX, 너를 먹어
닌텐도를 음미하고 
베이비, 너 꺼져 버려’

 
2009년 중순부터 중국 인터넷을 중심으로 ‘김정일 닭을 훔치다(金正日偸鷄)’란 정체불명의 노랫말이 대유행처럼 번진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 최대 인터넷 검색엔진 ‘바이두(百度)’에서 ‘김정일’이란 단어로 검색을 시도하면 ‘김정일 닭을 훔치다’란 아리송한 검색어가 자동으로 검색창 상단에 떠오른다. 이 검색어를 클릭하고 들어가면 ‘당신이 없으면 조국도 없다’는 한글 제목의 동영상과 함께 ‘쿵짝쿵짝’ 리듬으로 시작하는 군가풍의 노래가 2분47초간 울려 퍼진다. 동영상의 화면으로 보아 노래의 배경으로 깔리는 동영상은 북한에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네티즌들은 이 동영상에 중국식으로 개사한 우스꽝스러운 노랫말을 붙여서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유포시켰다. 노랫말에 등장하는 ‘김정일 동지(同志)’라는 부분은 ‘김정일 닭을 훔치다’라는 뜻을 가진 ‘김정일 토지(偸鷄·닭을 훔치다)’로 바꿨다. ‘김정일 동지’와 ‘김정일 토지(偸鷄)’는 뜻은 전혀 다르지만 중국어 발음이 각각 ‘통지(tongzhi)’ ‘토지(touji)’로 얼핏 듣기에 거의 유사하다. 한때 우리나라 TV 개그 프로그램에서 개그우먼 조혜련씨가 영어로 된 팝송을 우스꽝스러운 우리말로 개사해 불러 큰 인기를 끌었던 ‘아나까나송’과 비슷한 방식이다.

▲ 1.‘당신이 없으면 조국도 없다’란 원곡 2.가곡명: 김정일 닭을 훔치다 작자: HBL대제 3.제목 뒤에 등장하는 간략한 곡 소개 4.우산을 쓰고 현장지도에 나선 젊은 시절 김정일 5.주먹을 쥐고 일렬로 늘어선 노동자들
가사에 음란한 욕설 담겨
음차(音借)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노랫말을 붙인 만큼 이 노랫말 자체의 명확한 뜻은 불분명하다. 인터넷에 떠도는 가사원문을 검토한 복수의 중국인도 “원래의 노래를 음차해 무슨 뜻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동영상의 전체적인 분위기로 봐서 풍자한 노랫말 같다”며 “일반적으로 쓰는 중국어로는 전체적인 해석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실제 노랫말 가운데는 ‘아아아, 쿠빌라이’처럼 김정일과 별 상관없어 보이는 노랫말도 등장한다.

다만 문제는 중국어로 개사한 노랫말 가운데 일부가 김정일과 북한의 열악한 경제상황을 신랄하게 풍자한다는 데 있다. 예컨대 ‘김정일 닭을 훔치다/ 뼈다귀를 먹어봐/ 너 굶어 죽다/ 개와 싸울 힘도 없다’는 식이다. 일부 사이트는 ‘김정일 닭을 훔치다’란 노랫말 옆에 괄호를 열고 ‘배가 고파 훔친다’란 친절한 설명까지 달았다. 게다가 노랫말 가운데는 우리말 욕 ‘XXX’에 해당하는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음란한 성(性)적 표현도 군데군데 눈에 띈다. 욕설을 통해 대상을 비꼬는 태도가 역력히 드러난다는 평가다.

물론 이 노래의 원래 가사 자체는 풍자나 욕설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인다. 원래 한글 노랫말은 ‘사나운 폭풍도 쳐몰아내고/ 신념을 안겨준 김정일 동지/ 세상이 일백 번 변한다 해도/ 우리는 믿는다 김정일 동지/ 당신이 없으면 우리도 없고/ 당신이 없으면 조국도 없다’로 김정일을 찬양하는 정치적 선전가요의 냄새가 짙다. 특히 동영상 아래에 뜨는 원래의 한국말 가사에서는 ‘김정일’이란 이름을 고딕체를 사용해 크게 확대까지 했다.
 
중국 네티즌 “김정일이 대체 누구냐”
이 정체불명의 노랫말은 지난 8월부터 최근까지 중국 왕민(網民·네티즌) 사이에서도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중국 최대 검색엔진인 바이두와 중국판 유튜브(동영상 공유 사이트) 투도우왕(土豆網)등에는 ‘김정일 닭을 훔치다’란 동영상이 올라와 있는 사이트와 개인 블로그가 줄잡아 수십여 개가 있다. 이 동영상을 접한 중국 네티즌들도 댓글을 통해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동영상 하단 게시판에 댓글을 남긴 한 네티즌은 “웃겨 죽겠다, 하하하” “흐흐흐, 재능있다”며 “조선(북한)에도 F4(대만판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출연한 아이돌 그룹가수)가 있네”라는 반응을 나타냈다.

더욱이 일부 네티즌들은 ‘난감해서 말이 안 나온다’는 뜻을 가진 인터넷 유행어 ‘종(    ·글자 모양이 입을 벌리고 있는 사람 얼굴을 연상케함)’자를 써가며 “어이없어 죽겠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심지어 한 네티즌은 “너무 재밌다”면서 “동영상을 다운로드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냐”는 요청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누가 이 노래의 정확한 번역을 알고 있냐” “진짜 한국어 뜻은 무엇이냐”며 원래 가사에 대한 호기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노랫말의 유행을 계기로 북한과 김정일에 관심을 가지는 중국 젊은이들과 네티즌도 급속히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네티즌의 가장 대표적 반응은 ‘김정일이 도대체 누구냐’라는 것이다. 인터넷 사용량이 비교적 많은 중국의 ‘빠링허우(80後·1980년대 이후 출생자)’ ‘지우링허우(90後·1990년대 이후 출생자)’ 신세대들은 구세대와 달리 북한(조선)과 김정일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원곡은 김정일 찬양가
이 동영상의 원 출처에 대해서도 말들이 분분하다. 동영상 초반부에 잠깐 나오는 곡 소개에 따르면 이곡은 인민예술가 리종오와 황진영이 작사와 작곡을 담당했고 공훈배우 리경숙이 노래를 부른 것으로 돼 있다. 인민예술가 리종오와 황진영은 인민가요 제조기란 별명을 가지고 있는 작사·작곡가다. 공훈배우 리경숙은 북에서 상당히 인기있는 여가수로 보천보 전자악단 소속으로 알려져 있다. 보천보 전자악단은 지난 1983년 김정일(당시 조선노동당 비서)의 특명으로 만들어진 전자악단이다. 한 대북 전문가도 “동영상의 원곡인 ‘당신이 없으면 조국도 없다’는 북한의 김정일 찬양가 가운데 하나로 유명하다”고 확인했다.

하지만 중국어로 개사한 노래의 출처가 어딘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동영상 시작 하단부에 ‘HBL대제(大帝)’라는 중국식 인터넷 아이디와 인터넷 유행어가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중국 네티즌이 개사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것 아닌가”라는 추측만 가능할 뿐이다. 또 동영상 화면 오른쪽에 일본어로 된 번역도 같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일본을 거쳐 중국으로 흘러 들어간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도 하고 있다. 동영상 초반에 나오는 ‘1993년 6월 2일 방송’이란 일어 자막으로 미뤄 중국어로 개사한 노래의 배경으로 깔리는 동영상 자체는 1993년 이전에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노래의 유행에 대해 “혈맹이라고 할 수 있는 북한이 점점 중국에서 풍자의 대상으로 전락해가는 세태를 정확히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중국 인터넷에는 과거와 달리 김정일과 북한(조선)을 풍자한 이미지와 글 등이 넘쳐나고 있다. 이미지 가운데는 김정일의 신체 일부분을 과도하게 묘사하는 식의 사진과 그림들이 주종을 이룬다.

대개 이런 사진들은 주로 한국과 일본, 미국 등지에서 만들어진 사진과 풍자그림을 중국 네티즌들이 퍼서 인터넷에 올린 것들이지만 최근에는 중국 네티즌이 직접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사진과 글도 상당수다. 중국어 욕설과 인터넷 은어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검색엔진 ‘바이두’에는 ‘김정일 비밀생활’과 같은 김정일의 개인문제와 여성편력에 관한 검색어도 자동으로 떠올라 중국 네티즌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한 전문가는 “과거 문화대혁명 등으로 중국 경제가 극도로 피폐했을 때만 해도 경제상황이 양호했던 북한은 사회주의 모범생이란 소리를 들었다”며 “어쩌다 북한이 이렇게까지 중국 네티즌들의 놀림감이 됐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이동훈 기자 flatron2@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