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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억류 여기자 수감 북한 교화소는 어떤 곳
고무방망이로 머리 때려 죽이고 여성 음부에 구두 닦는 ‘인간 지옥’
북한은 지난 6월 4일부터 8일까지 우리의 대법원에 해당하는 ‘중앙재판소’에서 재판을 열어 미국인 여기자 로라 링(Ring)과 유나 리(한국명 이승은)에 대해 형법 69조 ‘조선민족 적대죄’와 ‘비법(불법) 국경출입죄’를 적용해 노동교화형 12년을 선고했다. 두 명의 여기자는 지난 3월 17일 북·중(北中) 국경에서 탈북자들을 취재하던 중 사전 정보를 입수하고 대기하고 있던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에 체포됐다.

북한에서 ‘조선민족적대죄’는 반국가 및 반민족범죄에 해당하는 중대 범죄로 최고 사형에 처할 수 있다. 북한 형법 제30조에 따르면 유기 노동교화형 기간은 15년을 넘길 수 없도록 규정돼 있으며, 15년 이상일 경우엔 무기 노동교화형 또는 사형에 처하게 돼 있다. 따라서 이들 미국 여기자들에게 선고한 ‘노동교화형 12년’은 사형과 무기형 다음에 해당하는 중형이다.

중형을 선고 받은 두 명의 여기자가 만약 북한인이었다면 정치범 교화소나 정치범 관리소에 수감돼야 한다. 하지만 이들은 ‘국가비밀 누설 가능성’ 등의 이유로 특별 교화소에 수감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국제인권단체나 국제사회의 압력에 대비, 평남 평성시와 황해도 사리원에 외부 선전용 특별 교화소를 만들어놓고 운영하고 있다.

▲ (왼쪽부터) 일본의 후지TV가 2004년 2월 공개한 북한 함경남도 요덕 정치범수용소. / 요덕 정치범수용소에서 정치범들이 경비대와 보위부원들이 사는 주택가를 돌며 인분을 퍼내 나르는 모습. / 일본 후지TV 촬영.
선전용 교화소는 일반 교화소와 달리 감방에 침실과 화장실을 별도로 갖춰 놓고 죄수들의 움직임을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허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범수나 경미한 경범죄자들을 주로 수용하고 있으며, 일반 교화소와 달리 가혹행위를 하지 않아 외부 손님이 방문할 때 공개적으로 보여주는 대외 홍보용 장소다. 북한은 ‘인권에 대한 문제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특별 교화소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곳이 우리의 교도소와 유사한 시설을 갖췄을 것으로 생각하면 착각이다. 비전향 장기수로 34년간 장기 복역하다가 1993년 북한으로 송환된 고(故) 이인모 노인조차 이 선전용 감옥을 둘러본 뒤 “이런 감옥에선 단 1년도 살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인모 노인의 이같은 발언은 북한의 ‘특별 교화소’ 시설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이인모 노인은 이 발언을 한 뒤 모든 선전활동이 중단된 채 고립돼 외롭게 생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범 교화소
재판 비공개… 보위부서 특별 관리
사망해도 가족들은 죄명조차 몰라


북한의 형법은 정치범과 경제범을 함께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치범과 경제범을 구분한다. 북한에서 정치범이란 반국가 및 반민족 범죄를 저지른 자를 말하는 것으로, 국가안전보위부에서 별도로 관리한다. 중범죄를 저지른 정치범은 ‘예심소’라고도 불리는 ‘중앙보위부 초대소’에서 혐의가 인정될 때까지 조사를 받게 된다. 모든 재판은 보위부 청사 안에서 진행되며, 절차나 진행사항은 모두 극비리에 이뤄진다. 지금까지 정치범 재판이 바깥으로 공개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따라서 정치범이 예심소나 교화소에서 사망하더라도 가족들은 그 정치범의 죄명조차 알 수 없게 된다.

정치범은 보위부 재판을 거쳐 형이 확정된 뒤 범죄의 정도에 따라 정치범 교화소나 관리소(수용소)로 수감된다. 정치범 교화소는 우리의 교도소와 유사한 감옥으로 정치적 죄질이 중한 사람을 수감한다. 고위 탈북자는 “1990년대 이후 경제난으로 체제가 흔들리고 외부 정보가 급격히 유입되면서, 남한 드라마를 복제하거나 중국과 내통한 사람을 시범적으로 공개 처형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내부 단속을 위한 의도적 행위다. 교화소 안에는 그 교화소로 온 뒤에 범죄를 저지른 수용자를 수용하는 별도의 지하감옥이 따로 있으며, 정치범에 대한 사형 집행은 보위부 내부에 있는 지하감옥에서, 고무방망이로 죽을 때까지 머리를 때리는 잔혹한 방법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범 관리소
마을 형태 집단 감옥… 정치범 가족 수용
한번 들어가면 죽어야만 나올 수 있는 곳


정치범 관리소는 정치범 교화소와는 다른 일종의 ‘수용소’로, 감옥형태가 아닌 마을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경미한 죄를 지은 정치범 본인이나 교화소에 수감된 정치범의 가족이 주로 수감된다. 그래서 관리소에는 아이들이나 노약자, 여성들이 많다. 정치범 관리소 역시 교화소와 마찬가지로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나올 수 없는 완전통제구역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요덕 15호 관리소’의 경우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출감이 가능한 소위 ‘혁명화 구역’이 별도로 만들어져 있어 3~15년의 형기를 마치면 석방될 수 있다.

1991년 이전까지 북한에는 2곳의 정치범 교화소와 10곳의 정치범 관리소가 있었다. 북한 최대의 1급 정치범 교화소였던 평양시 승호구역 화천동 ‘제26호 교화소’는 1990년 초 인권단체인 국제사면위원회(Amesty international)에 의해 공개되면서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그 덕분에 김정일의 남산중학교 교사였던 이성흡씨를 비롯한 일부 정치범들이 석방되기도 했다. 남산중학교는 북한의 최고위층이 다니던 엘리트 학교로, 이곳의 교사였던 이성흡씨는 김정일의 이복 동생인 김평일의 라인에 섰다가 미움을 받아 수감됐었다. 하지만 그는 출감 후에도 김정일 후계체제를 지속적으로 비판, 가족과 함께 요덕수용소로 끌려간 뒤 생사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김정일에 의해 납치됐던 한국의 영화감독 신상옥씨도 북한에서 탈출을 시도하다가 체포돼 승호리 교화소에서 강제노역을 했다. 김정일의 특별 방침(허락)에 의해 가까스로 풀려난 신 감독은 살아생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요덕수용소 생활을 묘사한 자네 책(수용소의 노래)을 읽어봤지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 내가 갔던 곳은 그런 곳(관리소)과는 비교되지 않는 생지옥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요덕수용소는 산 속에 있기 때문에 먹을 것을 조금이나마 구할 수 있으며, 상대적으로 통제가 느슨해 어느 정도 자율적인 행동이 가능하다. 하지만 승호리 교화소는 감옥으로 지어진 밀폐된 건물이어서 먹을 것을 구할 수가 없고, 통제가 심하며, 수시로 고문이 자행되기 때문에 수감자 사망률이 높다. 신 감독은 승호리 교화소에 대해 “나치 독일의 아우슈비츠에 비교할 만큼의 대량 학살이 무차별적으로 이뤄졌다”며 “그 실상을 영화로 찍는 것이 평생의 마지막 소원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승호리에 들어간 정치범들은 김정일의 특별 지시가 내려지지 않는 한 단 한 명도 살아나온 사람이 없다. 악명 높은 이 정치범 교화소는 국제사면위원회에 의해 공개되면서 1991년 공식 해산됐다. 수감돼 있던 정치범들은 함북 청진의 ‘25호 교화소’로 이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청진 교화소의 생존자로는 현재까지 탈북자 유태준씨가 유일하다. 유씨는 함흥 석탄판매소에서 지도원으로 일하다가 탈북, 1998년 11월 한국에 정착했었다. 하지만 2000년 6월 “북에 남아있는 아내를 데려오겠다”며 무단 입북(入北)했다가 국가보위부에 체포돼 종신 교화소인 청진 수성교화소에 수감됐다. 하지만 국제인권단체와 언론이 유씨 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하면서 문제가 확대되자 김정일은 “아내를 사랑하면 조국도 사랑할 수 있다”는 특별 방침을 하달, 유씨를 석방했다. 하지만 유씨는 평남 평성에서 근무하던 중 또 다시 탈북해 북한을 놀라게 했다.

외부에 비교적 잘 알려진 정치범 수용소는 함남의 요덕(15호) 수용소다. 이곳엔 유일하게 ‘혁명화 구역’이 있어 상대적으로 많은 석방자를 배출했다. 혁명화 구역이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출감이 가능한 ‘특별 구역’을 말한다. 한번 들어가면 죽을 때까지 나올 수 없는 일반 수용소와 달리, 출감의 가능성이 약간은 열려 있는 곳이다. 덕분에 한국에 입국한 요덕 수용소 출신은 약 20명에 이르고 있다. 요덕 수용소에는 혁명화 구역과 다른 ‘완전통제구역’이 있다. 이곳을 체험한 사람은 아직까지 단 한 명도 없다.

함경북도 회령 22호 수용소의 실상은 이곳의 경비병이던 안명철(40)씨가 1994년 완전무장한 채로 탈북하면서 처음 공개됐다. 회령 수용소는 5만명이 수감된 북한 최대의 정치범 수용소로 대형탄광과 돼지목장을 운영하고 있다. 종신 수용소이기 때문에 가족은 모두 해체돼 각자 다른 곳에서 노역에 동원되며, 김일성·김정일 부자에 대한 충성교육조차 시키지 않는 ‘죽음의 땅’이다.

북한에서 두 번째로 큰 정치범 수용소인 평남 개천 14호 수용소의 실상은 그곳에서 기적처럼 탈출한 신동혁(27)씨에 의해 처음 공개됐다. 수용소에서 태어나 24년간 바깥 세상을 구경한 적이 아예 없는 신씨는 그곳에서 짐승처럼 일만 하며 살아오다 극적으로 탈북했다. 그는 “어머니와 형이 탈출을 시도하다 처형당했고, 아버지는 아직 수용소에 수감돼 있다”고 말했다.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비서는 “개천 득장지구에 북한 최초의 수용소가 건설됐다”고 증언한 바 있다. 북한 최대 탄광지구인 개천 일대엔 정치범과 경제범을 수용하는 대규모 시설들이 집중돼 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석탄은 북한 기간사업에 전력을 공급하는 평양 화력발전소와 북창 화력발전소로 수송된다.

이번 핵실험 장소와 맞닿아 있는 함북 화성 16호 수용소의 생존자는 아직 없다. ‘인민무역부장을 지내다 숙청된 김창봉씨나 남로당 박헌영을 비롯한 고위 간부들이 화성 수용소에 수감됐다가 생을 마감했다’고 알려져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 함남 요덕의 ‘혁명화 구역’을 제외한 모든 수용소는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나올 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형법의 어느 조항에도 ‘(당사자가 아닌) 정치범 가족에게 연좌제를 적용하라’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어린이를 포함한 정치범의 가족마저 강제노역에 동원하는 것은 북한에서 형법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북한 곳곳에 만들어진 정치범 교화소와 수용소에는 약 20만~30만명의 정치범과 그 가족들이 수감돼 있다.

정치범과 달리 경제범은 우리의 경찰에 해당하는 ‘인민보안성’에서 관리한다. 경제범에게 적용되는 형벌은 사형, 무기 노동교화형, 유기 노동교화형, 노동단련형 있다. 북한의 형법상 유기 노동교화형은 15년을 넘을 수 없게 돼 있다.

경제범들은 인민보안성에서 1차 조사를 받고 각 지역 검찰소에서 심의를 받은 뒤 재판소로 넘어가 공개재판을 통해 형이 확정된다. 경제범에 대해서는 한국의 변호사 제도와 유사한 인민참심원 제도가 있다. 하지만 혐의자의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한 변호의 역할을 하기보다는 대부분 보안성에서 작성하고 검찰소에서 확인된 내용을 증명하는 앵무새 역할을 맡고 있다. 대한민국으로 넘어온 대다수 탈북자들은 혐의자를 위해 변론하며 때로는 무죄를 논하기도 하는 ‘변호사’의 존재를 보고 상당한 충격을 받는다. 이는 북한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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