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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철의 잡학사전] ⑧ republic과 공화제(共和制)
군주제만 경험한 동아시아, republic 번역할 단어 없어 옛 문헌 동원
2900년 전 집단체제 시행했던 주(周)나라까지 거슬러 ‘共和’ 찾아내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불행한 서거를 계기로 대통령제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에서 탄생한 대통령제는 내각책임제 또는 의원내각제 등과 함께 공화정의 중요한 정체(政體)를 이룬다. 국가의 통치형태를 뜻하는 정체는 크게 군주제와 공화제로 나뉜다.

공화제는 알다시피 군주제에 상대되는 개념으로 복수의 주권자가 통치하는 정치체제를 가리킨다. 영어로는 ‘republic’이다. 동양권에서 ‘공화(共和)’라는 말은 오랫동안 잊혀져 있다가 서세동점(西勢東漸) 시절인 개화기 때 ‘republic’이라는 외국어를 번역하면서 되살아났다.

중국은 예나 지금이나 외국어를 되도록 자기말로 바꿔 쓰기를 즐기는 편이다. 중국인들이 외국어를 한자로 풀어쓰는 경우는 크게 나눠 두 가지다. 하나는 뜻을 살려 번역하는 경우다. TV는 전시(電視)로, 엘리베이터는 전제(電梯)로 쓴다. ‘梯’는 사다리란 뜻이다. 또 하나는 발음을 살려 번역하는 경우다. 맥도날드를 ‘麥當勞’로 쓰는 식이다. 이런 전통은 예전부터 있었다. 중국이 불경을 번역할 때도 적용됐다.

개화기 때 동아시아 지식인들은 큰 고민에 부딪혔다. 전혀 다른 문명권인 서구 문명의 언어를 한자로 번역해야 하는데 개중에는 당시 중국에 전혀 없는 개념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republic’이 좋은 예다. 오랫동안 군주제만 경험해왔고 당시에도 군주제하에 있었던 동아시아인들은 백성들이 투표로 임기제 황제를 뽑는다는 개념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대의 지식인들은 고심 끝에 과거로 거슬러올라갔다. “중국엔 없는 것이 없다. 현재에 없으면 과거에는 있었을 것이다”는 게 그 시대 사람들의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거슬러올라가며 옛 문헌을 뒤지던 지식인들의 지적 작업은 마침내 주나라에서 결실을 맺었다.

중국 역사상 가장 장수 왕조인 주(周·기원전 1122?~기원전 249년)는 잠시 집단지도체제를 가졌던 적이 있었다. 주 10대 임금인 여왕(         )이 강력한 중앙집권정책을 펴다가 백성들의 불만이 폭발해 기원전 841년부터 기원전 828년까지 왕이 없이 집단지도체제로 운영된다. 이 시대를 옛 문헌에서는 ‘공화(共和)’로 기록하고 있다. 중국 최초이자 마지막인 공화시대는 여왕이 망명지에서 죽은 후 여왕의 아들인 선왕(宣王)이 즉위하면서 막을 내렸다.

‘공화’라는 문구를 발견한 지식인들이 무릎을 탁 쳤음은 물론이다. 이리하여 ‘republic’은 공화로 번역되게 된 것이다.

과거에 전례가 없는 경우는 어떻게 하나? 새로 말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근대문명을 받아들이는 데 적극적이던 일본 지식인들은 다수의 신조어를 많이 만들어냈다. 우리가 쓰는 자동차, 비행기, 경제, 행정 등 근대문명과 관련된 다수의 신조어는 개화기 때 일본 지식인들이 만들어낸

말이다. 이 중 일본인들이 가장 걸작으로 꼽는 말이 철학(哲學)이다. 철학의 원어(原語)인 ‘philosophy’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동양에는 유교 경전을 연구하는 경학(經學)은 있었지만 서양식의 철학은 없었다. 일본 지식인들은 고심 끝에 형이상학적인 개념인 밝을 철(哲)자를 사용해 사람의 머리를 밝게 만드는 학문이라는 뜻으로 ‘철학’이라는 신조어를 만든 것이다. 


 / 박영철  차장대우 yc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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