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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화교가 몰려온다] 100년 역사 인천 차이나타운
“자장면 타운 아닌 테마관광 명소로 거듭난다”
▲ 중국 정취가 물씬 풍기는 인천차이나타운. (photo 김승완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예전에는 ‘작은 중국동네’ ‘작은 산둥성(山東省)’이라 불렸죠.” 인천차이나타운 상가번영회장을 맡고 있는 손덕준(51)씨는 차이나타운의 옛 모습을 떠올리며 말했다. 손씨는 3대째 화교(華僑) 신분으로 차이나타운에 터전을 잡고 살아왔다.

인천역을 나오면 차이나타운의 관문인 패루(牌樓)가 눈에 띈다. 미국·일본 등 세계 각지의 차이나타운 입구처럼 이곳에도 패루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마을의 시작임을 알리는 것이다. 붉은색으로 치장한 건물의 외벽과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한자 간판, 심지어 가로등의 용 무늬 장식까지 한국 속에서 이국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차이나타운이다.

차이나타운의 역사는 100년을 훌쩍 넘는다. 1884년 4월 이 지역은 청(淸)국의 치외법권 지역으로 설정된 뒤 화교들이 몰려와 형성됐다. 중국과 가까운 지리적 이유로 당시 화교들의 진입이 가장 먼저 시작된 곳이다. “통배(나뭇배)를 타고 중국에서 하루면 올 수 있다고 했을 정도였죠.” 손씨는 지금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는 화교들은 대부분 인천을 거쳐 대전, 대구, 부산 등으로 활동범위를 넓혀 나갔다고 했다.

현재 인천차이나타운에서 활동하고 있는 화교들은 1000명이 넘는다. 이곳에서 상시 거주하는 화교와 중국 본토를 왕래하며 활동하는 화교까지 아우르는 수치다. 이들 대부분은 요식업에 종사하거나 중국 기념품을 파는 상점을 운영하며 생활하고 있다.

인천차이나타운에서 중국요리점을 운영하고 있는 곡창신(52)씨. 그는 화교2세다. 52년간 차이나타운 근처에 거주하며 반세기의 역사를 함께 했다. 그는 “한·중수교 이후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며 “이젠 주말이면 외국인 관광객도 많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화교2세 주유성(52)씨도 지금 갖는 기대가 꺾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는 “1970~1980년대만 해도 이곳 화교들은 한국을 ‘세금의 나라’ ‘경찰의 나라’라고 불렀다”며 “차별적 대우를 못 이겨 떠난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은 그때에 비해 살 만하다”고 전했다.

인천차이나타운 내 중국요리점은 30곳이 넘는다. 자장면도 이곳에서 생겼다. 화교협회 및 인천 중구 관계자들은 “‘차이나타운=중국집거리’라고 굳어진 인식의 변화가 차이나타운 발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손씨는 “요식업만이 아니라 상가, 편의시설, 숙박시설 등 이 지역을 관광자원화할 수 있는 명확한 방향이 제시되었으면 한다”며 “한국인이 미국여행을 갔을 때 코리아타운을 방문하고 싶어하듯 중국인들이 한국에 왔을 때 ‘인천차이나타운을 꼭 한번 보고 가야지’ 하는 생각을 갖게끔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차이나타운이 속한 인천시 중구 문화관광과 관계자는 “요식업뿐 아니라 문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구에서도 최근 특화사업을 준비 중”이라며 “올해 4월 재정경제부가 선정한 ‘지역특화발전특구’ 중 하나로 인천차이나타운이 지정된 것은 지역경제 활성화에 보탬이 될 것이다”라고 기대를 표했다. 인천 중구는 특화사업으로 8개 특별사업을 마련해 2010년까지 진행할 예정이다. 이 사업에는 △자장면 박물관 건립 △중국풍 전통공원과 테마정원 조성 △중국풍 전통상가거리 계획 등이 포함돼 있다.


/ 인천 =  장광수 인턴기자·연세대 전기전자공학과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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