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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일제 강점기, 그 때를 아십니까?”
국사 교과서에 없는 연애·수업·풍속 이야기… 국문학자들이 잇따라 출간

국사 수업 시간에 일제 강점기에 대해 배울 때면 식민지 압제 속에서 고난의 세월을 살았던 우리 조상이 불쌍해지곤 했다. 그러고보니 국사 수업 혹은 국사 교과서는 소기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한 셈이다. 우리 민족의 고난 극복 역사를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조상의 일상적 삶과 생활감정이 무엇인지 알려주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국사 교과서와 국사 수업에 큰 문제가 있었던 듯하다. 물론 이를 국사 교육에만 책임을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국사 교육이라는 게 국사학계의 축적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이뤄진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를 살았던 사람 모두가 독립운동 아니면 친일을 했던 게 결코 아닐진대, 그 무수한 갑남을녀의 일상적인 삶과 생활감정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어떻게 사랑하고, 공부하고, 여행하고, 먹고 마시고 입었는지 등을 되짚어보려는 노력은 최근 들어 주로 국문학계의 근현대문학사 연구자 사이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권보드래의 ‘연애의 시대’(현실문화연구)는 연애를 중심 개념으로 1920년대 초 신문과 잡지 기사, 연재 소설, 삽화, 광고 등의 자료를 살핀다. 1920년대 들어 여성이 거리에 나오는 게 비교적 자유로워졌다. 거리로 나선 청춘남녀의 오고가는 눈길 사이에 불꽃이 튀는 일도 잦아졌지만, 열정을 곧바로 발산하기보다는 편지를 주고받는 게 일반적이었다. 1920년대에 서간체 소설이 유례없이 유행했던 건 바로 그 시대가 자유연애의 기풍이 확산되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시대의 자유연애가 지닌 한계도 분명해서 봉건적인 인습과 관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새로운 자유와 전통적 억압이 공존하는 이중적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승원의 ‘학교의 탄생’(휴머니스트)에서 볼 수 있는 100년 전 학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서구문명의 수입을 통한 부국강병을 목표로 우후죽순처럼 설립된 근대식 학교는 온갖 이질적인 담론과 풍속이 교차하는 공간이었다. 구시대 선비와 전혀 다른 삶을 꿈꾸는 학생의 갈등, 과거제도 폐지라는 날벼락을 맞은 선비의 우울함, 서양인에 대한 공포, 신분 제약에서 풀려난 민중의 희망, 서당과 훈장 선생님의 퇴출, 사춘기 학생의 연애와 사랑, 외국어 열풍, 해외유학의 욕망. 실로 이질적인 것들이 복잡하게 공존하는 모습이 바로 당시 학교의 풍경이었다.

1885년 설립된 배재학당은 시험으로 학생을 선발하기는커녕, 학생들에게 공책과 연필, 그리고 점심 값을 지불했다. 학생이 돈을 받으면서 공부했던 것이다. 여학생을 구하기는 더욱 힘들었다. 1886년 스크랜턴 부인이 설립한 이화학당은 학생 구하기가 힘들어서 천연두에 걸려 광화문 밖에 내버린 아이들을 데려다가 치료해준 후 학생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위의 두 책보다 좀더 문학적인 책, 정확히 말하면 문학비평서로 이경훈의 ‘오빠의 탄생’(문학과 지성사)이 있다. 이 책은 식민지 시절의 다양한 풍속을 통해 근대문학과 근대성을 살핀다. 이경훈 교수(연세대 국문학)는 근대문학 그 자체를 지극히 풍속적이며 전형적인 식민지로 규정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식민지 혹은 식민화는 정치적 상황만을 고려한 게 아니라, 식민지 체제를 포괄하는 보편적 근대의 양상과 활동을 뜻한다.

이를테면 이광수의 작품 ‘만주에서’의 화자는 한강, 대동강, 청천강, 압록강을 연달아 언급한다. 그런 화자의 시점은 자연 그대로의 풍경을 관찰하는 시점이 아니라 풍경을 파노라마처럼 펼치며 달리는 기차와 매개된 시점이다. 요컨대 강(江)의 자연적 위치보다는 경의선 철도의 노선에 바탕을 둔 시점이다. 근대인에게 자연은 재구성되고 정복된 존재다. 기차를 타고 누빌 수 있는 땅, 과학기술과 시장 메커니즘에 의해 새롭게 재조직된 자연은 바로 인간이 정복한 식민지로서의 자연이다.

100여년 전 한반도 패권을 차지한 일제가 만든 조선 철도는 식민지 수탈의 도구임과 동시에 왕조시대에서 벗어나 산업을 일구고 근대화로 진입하는 데 큰 구실을 한 기간산업이었다. 박천홍은 ‘매혹의 질주, 근대의 횡단’(산처럼)에서 철도의 등장으로 조선인이 생활 문화와 시공간 개념 등에서 겪어야 했던 변화를 살핀다. 성별, 나이, 신분을 따지지 않고 승차권만 있으면 탈 수 있는 기차는 유교적 전통사회의 풍속 역시 변화시켰다. 남자와 여자가 같이 앉아 “기차놈, 빠르기는 하다마는 내외법을 모르는 상놈이구나”하는 말이 돌았을 정도였다. 또한 철도는 근대적 시간 관념을 전파하는 선구자였다. 시계 볼 일 없이 살던 사람들이 열차 시각표에 맞추느라 정확하고 규칙적인 근대적 시간을 배웠다.

근대와 자본주의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고, 자본주의와 광고도 불가분의 관계다. 김태수의 ‘꼿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황소자리)는 신문광고를 통해 들여다본 식민지 시대 사람들의 욕망 지도라고 할 수 있겠다. ‘절세미인이 몸에 실 한 오라기 걸치지 않은 순진 나체사진이외다. 그 풍만한 육체미는 고상하고 다시 보기 힘든 근세의 진사진이올시다.’ 1000부밖에 출판하지 않았으니 빨리 주문하라고 뻔한 거짓말까지 덧붙인 이 일제 강점기 광고의 과감성은 사뭇 놀랍다. ‘영어는 출세의 자본. 라디오 신문 잡지 지금에는 제군의 신변에 영어의 홍수다. 이것을 아지 못하면 현대 처세도 마음 안 노인다. 함을며 입신출세를 꿈꾸는 청소년 제군에게 잇서서는 영어는 제일 중요한 자본이다.’ 영어 통신강좌에 등록할 것을 권하는 이 광고 문구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영어 열풍을 떠올리게 하기 충분하지 않은가?

일제 강점기를 어떻게 볼 것인지를 놓고 벌어지는 최근의 논란은 아마 앞으로도 상당기간 결론이나 합의에 도달하기 힘들지 모른다. 그러나 거시적인 사관(史觀)이나 이념 문제 이전에, 도대체 그 시대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고 느끼고 생각했었는지 알지 못한다면 사관과 이념처럼 공허한 것도 없을 듯하다.


표정훈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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