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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론, 시사신보 게재
후쿠자와와 조선의 지식인들
▲ 후쿠자와는 조선 개화지식인의 정신적 스승이었다. 갑신정변을 주도한 개화파 지식인들. 왼쪽부터 박영호, 서광범, 서재필, 김옥균.
후쿠자와가 그의 문명개화론을 조선에 이식시키는 과정에서 김옥균, 박영효, 유길준 등 다수 개화 지식인이 그와 밀착했다. 갑신정변에도 후쿠자와의 손때가 곳곳에 묻어 있다. 배후에서 정변을 기획하고 지휘한 것도 사실상 후쿠자와였고, 정변 실패 후 김옥균의 탈출을 도운 것도, 망명객을 반겨맞은 이도 후쿠자와였다. 일본에서 김옥균의 아이를 낳은 일본 여성도 그의 하녀였을 만큼 김옥균에게 후쿠자와는 정신적 스승이었다. 유길준은 실제로 제자였다. 신사유람단 일원으로 1881년 5월 일본을 방문했을 때 후쿠자와는 유길준이 게이오기주쿠에서 1년반 동안 공부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유길준은 게이오기주쿠가 받아들인 첫 외국인이었다. 유길준의 ‘서유견문’은 머릿말에서 “남들이 이야기한 찌꺼기만을 주워모았다”고 실토할 만큼 ‘서양사정’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출판사도 후쿠자와가 설립한 ‘교순사(交詢社)’였다. 박영효와의 첫 만남은 1882년 박영효가 수신사로 일본에 갔을 때 이뤄졌다. 박영효가 후쿠자와의 식견에 감탄하고, 후쿠자와가 조선에도 시사신문 같은 신문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면서 1883년 10월 조선 최초의 신문이 탄생한다. ‘한성순보’다. 후쿠자와는 제자인 이노우에 등을 인쇄기까지 지참시켜 조선에 파견, 한성순보 발간을 사실상 관장했다. 그렇다보니 청국으로부터의 자주독립이 강조되고 일본의 영향력 증대를 시도하는 사설이 많았다. 춘원 이광수는 그를 가리켜 “하늘이 일본을 축복해 내린 위인”이라며 스스로 ‘한국의 후쿠자와’를 꿈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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