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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 내 남편은 국회의원] 한나라당 권철현 의원 부인 김경자씨(19)
“사랑의 주문에 걸려 반(半)정치인 됐어요”
"선거 치르며 지역구 사람들과 부대끼다 정들어... 고향 서울보다 부산이 더 편해"
든든한 세 아들 - 선거 때면 세 아들이 최고의 지원군
▲ 한나라당 권철현 의원의 부인 김경자씨가 부산에서 가져온 붕장어(아나고)회, 콩잎과 배춧국을 식탁에 내놓고 있다.
1968년 6월 6일 이화여대 유아교육학과 1학년생이던 김경자(金慶子·당시 19세)씨는 청량리역으로 향했다. 난생 처음 하는 미팅을 앞두고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기차를 타고 경기도 일영에 있는 딸기밭에 갔다. 남녀 10명이 모인 5 대 5 미팅이었다. 수줍은 듯 쪽지를 하나 집어들었더니 ‘클레오파트라’라고 씌어있었다. 잠시 후 반대편에 서있던 한 남자가 다가오더니 “제가 ‘시저’인데 혹시 ‘클레오파트라’인가요?”라고 물었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3학년생인 권철현(權哲賢)씨였다.

그날부터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시저’의 사랑 공세가 시작됐다. 가진 것이라곤 뚝심과 고집뿐인 것 같은 경상도 사내였다. 시도 때도 없이 권씨는 김씨 앞에 나타났다. 교정을 걷다보면 바로 앞에 서있었고, 전화를 일부러 안 받으면 집 앞에서 뻗치기를 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하도 옆에 붙어 다녀서 다른 남자에게 눈길 한번 줄 틈이 없었다.

잘 생긴 얼굴은 아니었는데 투박하고 푸근한 인상이 싫지도 않았다. 게다가 얘기를 하면 할수록 ‘따뜻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특히 “달동네에 가서 빈민생활을 해보니까…” 하는 경험담이나 정치 사안에 대한 얘기를 듣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해 여름 김씨는 부모님에게 “친구 집에 놀러간다”고 둘러댄 뒤 친구들과 권씨의 집이 있는 부산에 갔다. 송정에 있는 민박집에 머물며 바닷가를 거닐었다.

김경자씨는 그렇게 만난 남자와 결혼해 30년 넘게 살았고, 그렇게 처음 찾았던 부산에서 한 달 중 20여일을 보내고 있다. 고향인 서울보다 남편의 지역구인 부산이 그에겐 더 고향 같아졌다. 처음 부산에 내려갔을 땐 시장통 상인들이 경상도 사투리를 써가며 거칠게 대하면 눈물부터 났는데 이젠 그들 앞에서 넉살을 떨 만큼 내공이 쌓였다. 언니, 동생 사이가 된 지역 구민들과는 집안에 큰일이 있으면 서로 밥 해주고 반찬 나눠주며 지낸다.

매달 세 번째 수요일이면 지역 구민들과 등산을 한 지도 햇수로 7년째. 지난 12월 다녀온 산행이 85차였는데 7년 동안 독감 때문에 딱 한 번 빠졌을 뿐이란다. 세월도 사람은 못 바꾼다던데 남편을 위한 마음은 한 여성을 이렇게 바꿨다.

지난해 12월 26일 한나라당 권철현 의원(59·부산 사상구)의 서울 자택이 있는 신길동을 찾았다. 권 의원의 부인 김경자(56)씨는 크리스마스 연휴를 부산에서 보내고 막 서울에 도착했다. 얼마 전 치른 큰 아들의 결혼식 얘기를 꺼냈다. 부산의 한 교회에서 열린 결혼식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등 2000명 넘는 사람들이 대거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권 의원은 “요즘 권철현이 어려워서 (시민들이) 민란이라도 일으키러 모였다고 하더라”며 국가청렴위로부터 금품수수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데 대해 뼈있는 농담을 했다. 김씨는 “지난 12월 21일에 무혐의 발표가 났다”며 “현역 정치인도 이렇게 터무니없이 당하는데 일반인은 어떻겠느냐”고 했다.

▲ 1974년 권철현, 김경자씨의 약혼식 사진.
그는 “남편이 검찰에 고발된 얘기는 뉴스에 크게 다뤄졌는데 무혐의 처리됐다는 건 한두 줄 나오고 말았다”고 했다. “권력이 무서운 거죠. 진실이 아닌데도 이런 일이 막상 터지니까 저희 입장에선 위축되는 것 같아요. 상대방도 이런 걸 노렸겠지요. 정치인은 명예를 먹으며 사는 사람들인데 이번 일로 타격을 입었지요.”

기독교 신자인 그는 “세상 일이 그냥 쉽게 이뤄지는 게 없다”면서 “하나님은 고통 뒤에 또 선물을 주시니까 좋은 선물 주시지 않겠느냐”며 웃었다.

정치인의 아내가 된 뒤 여러 일을 경험해봤다. 김씨는 2004년 7월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벌금 80만원을 낸 적도 있다. 그해 4월 총선을 앞두고 세 차례에 걸쳐 관내 유권자들의 친목 모임에 참석해 선거 관련 발언을 했다는 혐의였다. “관광버스에 올라타 ‘권철현 의원 부인입니다, 오늘 날씨 참 좋네요~ 잘 다녀오세요’한 게 문제가 됐어요. 판사와 검사 앞에 죄인처럼 있었어요. 무슨 말 더 하면 괘씸죄로 걸릴까 싶어서 말도 제대로 못했고요.”

남편이 원망스러웠을 법도 한데 아니란다. “이만큼 함께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남편을 탓한들 무슨 소용있겠어요? 남편이 입버릇처럼 ‘적극적이고 긍정적이고 낙천적으로 살아라’ 했는데 이제 저 스스로에게 그 주문을 외우며 살 뿐이죠.”(웃음)

“선거 해보면 보람 있어요”

김씨는 정치인 아내로서 인터뷰를 한다는 생각에 불편한 마음이었단다. 전날 밤 내내 잠을 뒤척거렸고 여기자가 자신을 인터뷰하는 꿈까지 꿨다고 했다. 지역구 3선의원의 부인답지 않았다. “부인들이야 그림자처럼 다닐 뿐이죠. 남편들이 선거 때 직접 나서서 100점을 얻는다면 부인들은 30점이나 얻을 수 있을까요? 그 30점 얻으려고 다들 이렇게 마음 졸이며 살긴 하지만….”

그는 “정치인 부인은 전생에 지은 죄가 많다고들 한다”며 “어디 가든지 굽신거리고 자신을 낮춰야한다”고 했다. 한데 김씨와 얘기를 하다보니 이제껏 만나본 어떤 정치인의 배우자보다도 선거 유세와 지역구 활동이 적성에 맞아보였다. 선거 얘기를 꺼냈더니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선거는 총칼 없는 전투예요. 상대방이 아무리 당선 확률이 낮다고 해도 선거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것이고요.” 1996년 처음으로 남편을 따라 유세장에 나갔는데 지인들이 “서울 말씨 써서 남편의 표를 깎지 말고 부산 사투리를 섞어 쓰라”고 권했다. “사투리를 흉내내 따라해보려고 했는데 도리어 더 어색해져서 포기했죠.”(웃음)

그는 남편을 위해 선거유세에 나간 덕분에 전쟁터에서의 동지애가 어떤지도 간접 경험했다. “16대 때 선거 막바지에 제가 몸살이 걸려 많이 아팠어요. 길 가다가 당원 한 명을 만났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지데요. 그랬더니 ‘우리만 믿으라’며 손을 꼭 잡는 거예요.” 그때를 회상하는 김씨의 눈에 벌써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김씨는 남편의 지역구 선거만 세 번 치른 게 아니다. 부산 지역의 지방선거는 물론 1997년, 2002년 대선에서도 적극 뛰었다. 2002년 선거 때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부인인 한인옥씨를 지근에서 보좌했다. 남편이 당시 이 후보의 비서실장이었기 때문이다.

“새벽부터 목이 쉬도록 돌아다니며 외쳤는데 (이회창 후보가) 지고 나니 기가 막혀서 말도 안 나오데요.” 그에게 “선거운동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고 했더니 “제가 솔직히 선거운동할 때 ‘소질이 있다’는 말을 좀 듣는다”며 멋쩍어했다. 남편이 선거에서 당선되고 난 뒤엔 어떤 심정일까. “전투에서 승리했으니 물론 기쁘죠. 제가 적성에 맞는 것 같다고들 하시는데 사실 저는 감투 써본 것이라곤 중·고등학교 때 분단장 해본 게 전부인데….”(웃음)

빈민문제 다루다 일본으로 쫓겨가

▲ 1998년 권철현 의원의 후원회 자리에서 세 아들과 함께.
두 사람은 만난 지 6년 만인 1974년 4월 서울 영락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김씨는 연세대 행정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동아대 시간강사가 된 남편을 따라 부산으로 내려갔다. 부산 보수동에 있는 전세 50만원짜리 단칸방에서 신혼 살림을 시작했다. 1972년 대학을 졸업하고 2년간 YMCA에서 유치원 교사로 일하던 그는 부산에 내려가서도 2년간 영락교회와 성지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에서 유치원 교사로 일했다.

연애시절에도 ‘빈민촌 경험담’으로 김씨를 유혹했던 남편은, 결혼 후에도 도시빈민 실태 조사반을 꾸리며 빈민문제 연구에 매달렸다. “남편은 빈민촌에 대한 자료를 이불 위에 펼쳐놓고 보다가 잠이 들곤 했어요. 그래선지 제가 남편이 빈민촌의 왕초가 돼 있는 꿈을 여러 번 꿨다니까요.”(웃음)

1982년 조교수 승진을 앞두고 ‘학교를 그만두라’는 외압이 들어왔다. ‘반체제 활동과 흥사단의 이론적 지주’라는 명목이었다. 당시는 빈민문제만 공론화해도 보안사 조사를 받던 시절이었다.

권 의원은 결국 1983년 일본 국립 쓰쿠바대(筑波大)로 유학을 떠났다. “보안사에 쫓겨 도망간 셈이죠. 저랑 세 아들보다 6개월 먼저 일본으로 가면서 남편은 ‘나를 이렇게 고생시킨 놈들, 어디 두고 보자’며 별렀어요.”

일본에 간 지 1년쯤 됐을까. 짧은 일본어 실력이었지만 동네 수퍼마켓에 가서 점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 시절, 지독한 어려움을 겪었던 다른 분들에 비하면 저희 형편은 훨씬 나은 셈이죠. 하지만 당시엔 참 삶이 고달팠었어요. 한데 남편이 일본에서 박사가 됐고 지금 정치하며 큰뜻을 펼칠 수 있게 됐으니 다 보안사 덕분이죠.”(웃음)

1987년 귀국한 뒤 남편은 도시발전연구소를 열었고 동아대 행정학과 교수가 됐다. 부산YMCA와 참여와 자치를 위한 부산지역 시민연대 등에서 시민 운동가로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지방이여, 깨어 일어나라-부산 대개조론’ 같은 책이 화제를 모아 수백 회에 이르는 대중 강연을 하고 다녔다. 3년반이나 부산MBC 라디오 프로그램 ‘지방시대, 부산’도 진행했다.

정치인 남편

그러던 남편은 1995년 민자당 부산 사상갑 지구당위원장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교수나 시민운동가로서 뜻을 펼치는 데에 한계를 느끼는 것 같았어요. 언젠가 정치를 할 줄 알았기 때문에 별로 놀라지도 않았어요.”

다른 남자 정치인들은 “정치 하려면 나랑 이혼하고 하라”며 아내들이 결사 반대했다던데 그러고 보면 권 의원은 참 부인 복이 많은 것 같다. 김씨는 고교시절에도 수업시간에 정치 얘기가 나오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더란다. 이래서 천생연분이란 말이 있나보다.

남편은 그렇게 정계에 입문한 뒤 세 번 연속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그 와중에 한나라당 대변인도 2년 가까이 했고, 대통령 후보 비서실장도 했다. 17대 국회 들어선 뒤 권 의원은 상임위 활동에 열심이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인 그는 2004년 국감에서 “금성교과서가 펴낸 고교 한국 근·현대 교과서가 친북 성향을 띠고 있다”고 지적해 여·야가 ‘색깔론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관련한 문제에 집요하게 매달리기도 했다.

이런 남편을 보는 아내 시각은 이렇다. “남편이 과거에 비서실장, 대변인 하면서 ‘누구 쪽 사람이다’ 하는 게 강해진 것 같아요. 그걸 희석시키려고 정치 중심에서 벗어나 있으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려 애쓰더라고요.”

김씨에게 요즘 한나라당이 사립학교법 개정안 통과에 반대해 장외투쟁하는 것에 대해 물어보았다. “야당이 야당 노릇을 잘해야 하는데…. 호남 지역에 폭설 피해가 있는 데다 예산안 처리까지 앞두고 있어서 장외투쟁하는 것도 다들 힘들어하실 것 같아요. 그런데 정작 국민을 만나보면 왜 한나라당이 이 법을 막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남편이 당내에서 박근혜 대표를 반대하는 ‘반박(反朴)’으로 분류되고 있다는 얘기도 꺼냈다. “남편이 한나라당이 나아갈 길을 제시하면서 ‘잘해보자’고 했더니 ‘반박’이란 말을 듣고, 얼마 지나니까 ‘골수 반박’이란 말을 듣나보데요. 정치란 게 옆에서 걸고 넘어지는 것이라지만….” 김씨는 정말 안타깝다는 표정이었다.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한다. 남편이 여당에서 야당 소속으로 바뀌면 부인도 마찬가지다.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남편이 여당 소속일 때 청와대에 한번 들어가봤어요. 그때 야당의원의 부인들이 ‘힘들다’고 했는데 잘 실감이 안 나더라고요. 그런데 이렇게 역전될 줄은 몰랐죠.”

그는 “여당, 야당으로 바뀌어보는 게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는 면에서 좋은 것 같다”면서도 “야당이 되고 나면 확실히 여당 때에 비해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드는 것 같더라”고 했다.

김씨는 평소 한 달 중 절반 이상을 부산에서 보낸다. 요즘 같은 연말연시엔 행사가 많아 20일 정도 부산에 있단다. 서울에 오면 쉴 수 있지만 지역구에 가면 늘 바쁘단다. “일을 하고 있다고 여겨져서 그런지 부산에 가야 마음이 편해요. 제가 원래 사람을 좋아해서 더 그런지 몰라도 지역구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는 게 좋아요.” 그런데도 “선거 때 됐나보네, 평소 코빼기도 안 내비치더니 나타나는 걸 보면~” 같은 말을 듣기 일쑤란다.

“사람들이 정치인들을 늘상 욕하는 것 같지만 막상 정치인이 행사장에 가면 다들 좋아해요. 또 국회의원에게 바라고 기대하는 것도 많고요. 이래서 정치라는 게 어려운 건가봐요.”

김씨는 남편의 부산시장 선거 출마에 대해 구체적인 말을 피했지만 “부산을 바꿔야 한다, 부산이 잘돼야 한다는 꿈을 늘 갖고 사는 사람”이라고 남편을 표현했다. 그는 서울과 부산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살다보니 늘 공중에 떠다니는 기분이란다. “그런데 왔다갔다 하다보면 세월이 참 빨리도 간다 싶어요. 금방 선거철 다가오고 그런다니까요.”(웃음)

김씨가 부산에서 오전에 갖고 올라왔다는 붕장어(아나고)회, 콩잎, 깻잎을 배춧국과 함께 식탁에 내놓았다. 남편을 위한 아내 마음이 녹아있어서인지, 엄마가 차려준 밥상만큼 맛있었다.

황성혜 주간조선 기자(coby072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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