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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 내 남편은 국회의원] 한나라당 맹형규 의원 부인 채승원씨⑬
“남편이 유명해질수록 조바심이 나요”
내성적인 성격 탓에 도와주지 못해 안타까워 "대범하게 해달라" 기도하기도
남편과 미팅이 처음이자 마지막 미팅... 정치인보다 기자할 때가 더 좋아
정치인 아내의 노하우
“진심을 주고 마음을 사야”
▲ 한나라당 맹형규 의원의 부인 채승원씨는 교회에 가면 "제가 좀 담대해져서 남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기도한다.
몇 달 전부터 한나라당 맹형규(孟亨奎·59·서울 송파 갑) 의원의 발언 수위가 부쩍 높아졌다. 지난 9월 노무현 대통령이 연정론을 제기하자 맹 의원은 “대통령이 사퇴 카드를 던질 가능성이 높다”며 “한나라당-호남-반노(反盧) 세력을 규합하는 빅텐트 정치연합을 하자”고 했다.

그러자 정부·여당 쪽의 반발이 거세졌다. 선거 때마다 맹 의원의 상대방 후보 측이 썼던 “(맹 의원은) 성(姓)이 맹씨라서 맹하다”는 인신공격성 비판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열린우리당 대변인은 “서울시장 후보설이 있어선지 (맹 의원이) 요즘 튀는 말을 많이 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더니 지난 11월 15일 맹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의 추종세력이 재집권하는 건 국가적인 재앙”이라며 “이걸 어떻게든 막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서울시장에 출마한다”고 밝혔다. 이미 당 정책위의장직을 내놓은 그는 ‘한강(漢江) 이름을 한강(韓江)으로 바꾸자’며 ‘대(大) 한강 르네상스’를 모토로 선거전에 나서고 있다.

여기까진 서울시장 출마 선언을 한 3선 의원의 최근 스토리다. 하지만 그의 집안으로 가면 사정은 달라진다.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그의 부인 채승원(蔡勝媛·59)씨는 좌불안석이다. 요즘 채씨는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한다. “남편이 시장에 당선되게 해달라”가 아니란다. “하느님, 저 좀 담대해지게 해주세요” “제발 남편에게 도움이 되도록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한단다.

웬 내숭인가, 싶어진다. 하지만 채씨는 아직도 “맹형규 의원 안사람입니다”란 말 빼고는 도대체 다른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남편이 정치에 입문한 지 10년이 흘렀는데도 말이다.

선거철에 시장에 가서도 마찬가지다. 달려가서 시장 상인을 끌어안고 덥석 손을 잡아도 부족할 마당에 “지금 물건 팔고 계신데…” 하면서 쭈뼛거린다. 선거를 치르면 채씨는 10㎏씩 몸무게가 줄어든다. 남들처럼 선거운동을 열심히 따라다녀서가 아니라 음식이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 않아서란다. “초대받지 않은 자리에 불쑥 가서 처음 보는 사람들 손 잡고 인사하는 게 정말 너무 힘들어요.”

이런 부인에게 남편은 “당신 보기 정말 안쓰럽다. 미안하다”고 할 뿐이다. 아니나 다를까, 채씨는 이날 인터뷰 자리에도 어렵게 나왔다. “남편 부탁으로 인터뷰에 응했느냐”고 물었더니 어색한 듯 “아~, 네”라고 답했다.

지난 11월 14일 서울 석촌호수 근처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인터뷰를 집에서 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연방 말했다. 채씨는 “아래층 집이 수리 중이고 친정 어머니가 오셔서…”라고 말했지만 자택을 공개하기가 영 마뜩지 않았던 것 같다. 이런 아내에게 남편은 출근하면서 “소신껏 인터뷰하라”며 “당신은 사람이 너무 여려서 탈이야”라고 했단다.

“정치인과 사는 것 버거워”

이미지 메이킹 작전에 돌입한 탓인지 맹 의원의 발언이 부쩍 늘었다고 했다. 채씨는 “그런 것도 좀 필요하겠죠”라고 했다. 서울시장 선거를 치를 때도 이전처럼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있을 것이냐고 물었다. 채씨는 낮은 어조로 “이번엔 적극적으로 남편을 도와야할 것 같다”고 했다. “굉장히 큰 선거가 되겠죠. 너무 큰일이라 두려운데 남편은 확신에 차 있어요. 전 하늘의 뜻이겠거니 해요.”

채씨는 ‘품는다’는 표현을 자주 썼다. “국회의원도 그렇지만 행정을 책임지는 분들도 어머니처럼 품을 수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남편에게 ‘서울이란 큰 도시를 품을 수 있겠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하네요.”

말이야 이렇게 하지만 솔직히 채씨는 두려움이 앞선다. 1996년 남편이 처음 국회의원 선거에 나갈 땐 뭔지 몰라서 겁이 났는데 그렇게 선거를 세 번 치렀는데도 조심스러운 마음은 여전하단다. “선거 때면 사람들이 ‘이번에 당선되고 나면 다음 번엔 훨씬 여유가 생길 것’이라고들 해요. 그런데 전혀 아니에요.” 그는 안타까운 표정까지 지었다.

▲ 1984년 맹형규 의원이 연합통신의 런던 특파원으로 있을 때 유럽의 한 케페에서.
채씨는 남편에게 “정치인 남편이랑 사는 게 좀 버겁다”는 말을 하곤 한단다. 이런 아내에게 남편은 큰 걸 바라지 않는다. 선거를 앞두고 “나 좀 도와줘” “당신 (유세 따라다니려면) 많이 걸어야하니까 건강 좀 챙겨”라고 한다.

본인 사정이야 어떻건 간에 지역구민들은 ‘정치인의 아내’에게 이런저런 부탁을 많이 한다. 남편은 물론 아들, 손주의 취직 자리를 알아봐 달라는 민원이 특히 많다. “할머니가 ‘우리 손자 제발 일 좀 할 수 있게 해줘요’라면서 쪽지를 주머니에 넣어주면 정말 난감해요. 고민하다가 남편에게 말하면 ‘당신 말은 안 들은 걸로 한다’고 해요.” 채씨는 “국회의원, 그게 보기와 달리 참 어려운 직업입니다”라고 했다.

미팅서 같은 꽃이름 쪽지 뽑아

국회의원 부부 중엔 왜 이렇게 첫 미팅에서 만난 운명의 커플이 많은지 모르겠다. 두 사람도 그랬다. 65 학번인 두 사람은 경기도 동구릉에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와 서울여대 가정학과 단체 미팅에서 처음 만났다. 꽃이름을 쓴 쪽지를 뽑아 짝짓기를 했다. 두 사람은 ‘아네모네’라 쓴 쪽지를 나란히 뽑았다. 그렇게 만났다.

“카키색 군복 바지에 하얀 셔츠, 팔을 둥둥 걷어붙여 입고 나왔더라고요. 래이방 선글라스를 주머니에 꽂고 손수건을 목에 묶고서요. 첫인상은 서글서글하고 서구적이다 싶었는데 좀 설치더라고요.”(웃음) 맹 의원은 당시를 “어찌나 예쁘고 겸손하던지 제가 좀 쫓아다녔다”고 한다.

채씨는 석촌 호숫가 산책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조금 전 창밖으로 청춘남녀가 걸어가는 걸 봤어요. 남자가 애교를 피우더라고요. 지금 있는 것 모두 다 돌려주고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요.”

하여튼 연애시절이 그렇게 좋았나보다. 남편은 몰래 몰래 미팅을 더 했는지 몰라도 자신은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단다. 맹 의원은 당시 기숙사 생활하던 채씨를 만나러 서울여대를 매일 출입하다시피 했다.

▲ 1998년 첫째달 진희씨 결혼식 때.
결혼식은 맹 의원이 1972년 합동통신에 입사한 뒤 올렸다. 모든 게 무난했다. 딸이 7명이나 되는 채씨 집의 자매들도 두 사람의 데이트를 도왔고, 부모님도 흔쾌히 승낙했다. 그 뒤로 내내 그는 ‘기자 맹형규’의 아내였다. 맹 의원은 1980년부터 동양통신과 합동통신이 통합된 연합통신에서 일했고 1988년엔 국민일보로 자리를 옮겼다.

“남편이 연합통신의 초대 런던특파원으로 있을 때예요. 가장 힘든 때였는데 지금 돌아보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에요. 1층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남편은 2층으로 올라가면서 ‘여보, 나 출근할게’ 했지요.”

남편은 1991년 SBS로 옮겼고 8시 뉴스 앵커가 됐다. 채씨의 아픔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남편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채씨의 마음은 불편하기만 했다. “남편이랑 어디 같이 가면 혼자 멀리 뒤처져 가는 게 버릇이 됐어요. 온 가족이 다닐 땐 애들만 아빠랑 걷게 해요.”

아이를 강가에 내놓은 것처럼 남편에 대해 조바심을 치기 시작했다. 뉴스가 시작돼 남편이 첫 멘트를 하고 진행을 마칠 때까지 채씨는 성경책을 붙잡고 기도를 했다. “여름엔 손에 하도 땀이 나서 성경책 잡은 손이 미끌미끌해졌어요. 사실 지금도 그런 마음으로 살아요.”

정치부 기자 부인에서 정치인 부인으로

그러니 남편이 정치한다고 나섰을 때 오죽했을까. 채씨는 정치부 기자인 남편을 통해 정치를 엿봤다. 정치부 기자로서 9·10·11대 국회를 출입할 때 남편은 새벽 2시에 들어오고 새벽 5시에 출근하기도 했다. 남편은 자주 채씨에게 “우리나라 정치는 바꿔야할 게 너무 많아”라고 말했다. 그래도 본인이 정치한다고 직접 나설 줄은 몰랐다.

1995년 9월 남편은 “몇 달 고민했는데 정계에 나가야할 것 같다”며 “부디 바짓가랑이는 잡지 말아달라”고 했다. 채씨는 “그 험한 데 가서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 “방송기자의 꽃이라는 메인뉴스 앵커에다가 보수도 많은데 무엇이 더 부러울 게 있느냐”고 했다. 말렸지만 곧 포기했다. “남자들은 자잘한 건 들어주는 것 같아도 정말 큰일은 본인 마음대로 하는 것 같아요. 내가 고집할 게 아니구나 싶었어요.”

그래도 모든 게 너무 두려웠다. 남편이 진흙탕 같은 데서 잘 버틸 수 있을까 싶었다. 첫 선거를 준비할 때 둘째 딸 진수(27)씨는 고3 수험생이었다. 큰 딸 진희(30)씨는 원래 살던 여의도에서 엄마 대신 동생의 도시락을 챙겨주고 집안 청소를 했다. 맹 의원 부부는 지역구로 정한 송파구에 급히 전셋집을 얻어 살았다. “한번은 큰 딸이 과로로 길에서 쓰러졌다는 말을 들었어요. ‘이거 정말 못할 짓이다’ 싶었는데 그렇다고 애들 아빠를 말릴 수도 없었어요.”

남편은 결국 국회의원이 됐다. 그렇게 세 번이나 했다. “정치에 입문할 때 남편은 꿈이 아주 컸어요. 하지만 막상 정치인이 된 뒤엔 첩첩산중이라면서 어려워하데요.”

힘들기는 아내도 마찬가지다. 채씨는 정치인 남편을 둔 덕에 세상에 모든 걸 드러내고 살아야 하는 걸 지금껏 힘들어한다. 남편이야 하고 싶은 정치를 한다지만 부인은 무슨 죄인가. 채씨는 “고시생이 혼자 공부하듯이 그렇게 살면 되지 왜 나까지 나서라고 하느냐”며 “나 좀 살려달라”고도 한다. 남편은 이런 아내에게 “나도 그러면 좋겠는데 그게 아니네”라고 한다.

채씨는 시간이 갈수록 정치권이 간단치 않은 곳이란 걸 실감한다. “정말 대단들 해요. 지난번 선거 때 네티즌이 움직여 사실이 아닌 걸 진실인 양 몰고가는데요. 터진 문제를 주워담을 시간도 없이 공격을 하더라고요.”

남편이 성(姓)씨 때문에 ‘맹하다’는 말을 듣는 것엔 이제 이골이 났다. “아, 그 말이요? 하도 들어서 놀라지도 않아요. 초등학교 반장선거에서도 그런 (수준 낮은) 말은 안 나올 거예요. 조상님께 죄송스러울 따름이죠.”

그는 정치권에서 정책을 비판할지언정 상대방을 해치는 말은 안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요즘 맹 의원도 노무현 대통령을 직접 비판하고 있지 않느냐고 했다. “네, 라디오 방송 인터뷰 하는 걸 보면서 ‘이 사람이 정말 못 참고 분노하고 있구나’ 싶데요. 국감장에서 말하는 걸 봐도 남편은 사람을 궁지에 몰아놓고 공격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맹 의원은 ‘베스트 드레서 의원’ ‘국감 스타 의원’으로 선정되곤 한다. 반면 상대방 당에선 ‘정치력이 부족하다’거나 ‘등 따습고 배부른 전형적인 한나라당스러운 사람’이란 비판도 듣는다. 채씨는 그 말이 좀 못마땅한 듯했다. “남편은 좋은 가정에서 풍파없이 자랐어요. 여당에서 처음 정치를 시작했지만 기질적으론 아주 매서운 사람이에요. 은근히 정곡을 찌르며 아픈 말도 잘하고요.” 그는 “남편은 인상 때문에 귀공자풍이란 말을 듣는데 전형적인 막걸리풍”이라며 웃었다.

요즘 그는 평소보다 일찍 출근하는 남편을 위해 전날 우려낸 멸치 장국에 국수를 말아 밥상을 차리면서 아침을 맞는다. 지역 구민의 경조사나 결혼식 등은 챙기지 않고 꼭 참석해야 할 지역구 행사에만 간다. 동창회에 나가면 친구들은 그에게 “얘, 너 보기와 달리 강한 구석이 있나보다. 정치인 아내로 10년째 일하는 걸 보면 말이야”라고 한단다.

연세대 국제대학원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큰 딸은 다행히 정치인이 아닌 의사 남편을 만났다. 연세대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한 둘째 딸은 미국 뉴욕의 디자인학교 파슨스에 다니고 있다.

평생 일 한번 해본 적 없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정치인 아내로 지내는 그는 삶의 재미를 어디서 찾는지 궁금했다. 이따금씩 오페라나 음악회 공연 보러 가는 것이란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나비부인 같은 오페라 곡을 들으면 눈물이 나요. 공연장에 가서 막이 오르면 막 가슴이 뛰기 시작해요. 남편은 제 마음 모를 거예요. 오페라 보면서 울면 자기가 제 속 썩여 우는 줄 알겠죠, 뭐.” 채씨는 노래를 계속하다가 대학입시를 앞두고 목에 문제가 생겨 성악가의 꿈을 접었다고 한다.

채씨에게 “지금이라도 남편이 정치 그만둔다고 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저야 괜찮죠. 그런데 절대 그런 일 없을 것 같은데요.”(웃음)

그는 남편이 정치인으로 방송 화면에 나올 때보다 앵커로 마이크 잡았을 때가 더 좋았고, 방송기자 할 때보다 ‘볼펜(인쇄매체) 기자’할 때가 더 좋았다고 한다. 3선 의원으로 시장이 되겠다는 남편 마음도 과연 그럴까 싶다. 하긴 남편과 아내 마음이 늘 같으란 법은 없다.

황성혜 주간조선 기자(coby072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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