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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 내 남편은 국회의원]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의 부인 이화익씨⑩
“끼 많은 사람, 기(氣) 세워주며 살지요”
“눈치보지 말고 좋아하는 일 하고 살아야...
일 안하고 욕 안먹느니 일하고 욕 먹는게 나아”
‘이화익 갤러리’ 이화익 관장
전시회ㆍ강의ㆍ출장… 정치인 남편보다 더 바빠
▲ 1991년 정 의원의 미국 연수시절. 정 의원 식구들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살자`는 주의다.
“아빠는 이제 영화배우 해보는 것만 남았네.” 최근 한나라당 정두언(鄭斗彦·48·서울 서대문 을) 의원의 첫째딸 호희(20)씨가 한 말이다. 정 의원이 10월 21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대강당에서 그룹 클릭 B와 공연을 펼친다는 말을 듣고나서였다. 정 의원은 당내 연극 모임 ‘여의도’ 멤버로 연극무대에도 서봤고 최근 ‘두 바퀴로 가는 행복’이란 타이틀의 2집 앨범도 펴냈다. 1집 앨범은 2003년 서울 정무부시장 이임식을 앞두고 펴낸 ‘정두언과 함께 떠나는 추억의 팝송 여행’이다.

정 의원은 대학시절부터 그룹 사운드에서 노래를 불렀고 공무원이 되고 난 뒤 방송국 탤런트 시험에 응모하기도 했다. 국회의원 하기엔 잡기(雜技)에 너무 능하다고 해야 하나. 그러니 “저 양반 주책이다” “정말 못 말리겠다”라는 말도 듣는다. 연예인협회에 가수분과로 등록돼 있는 그에겐 ‘현역 국회의원 가수’란 칭호까지 붙었다. 본인 말대로 연예인의 피가 흐르는 정치인이다.

이런 국회의원을 남편으로 둔 이화익(李和益·48)씨를 지난 10월 21일 만났다. 그는 서울 종로의 ‘이화익 갤러리’ 관장이다. 화랑 입구엔 ‘정두언 의원과 클릭 B 조인트 공연’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언뜻 봐도 차분하고 다부져보이는 이씨, 그가 ‘철없는 남편’이랑 사는 얘기를 들어보자.

“이러다가 (정 의원의) 전공이 (가수로) 바뀌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이씨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그러더니 정색을 하고 말을 했다. “누구든 하고 싶은 일을 눈치보지 않고 하는 건 좋은 것 같아요. 하고 싶어도 체면 차리느라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잖아요.” 맞는 말이기도 한데 어디 아내 마음이 이렇기만 하랴 싶었다. 두 사람은 닭띠 동갑내기다. 생일은 부인 이씨가 조금 빠르다.

인터뷰 시작한 지 시간이 한참 흘러 “남동생 같을 때도 있겠다”고 했더니 그가 한술을 더 떴다. “동생이면 낫게요? 말 안듣는 큰 아들 한 명 둔 거죠. 우리 애들은 말 잘 듣거든요.”(웃음) 남편은 뭐 그리 하고 싶은 게 많은지 이씨는 잘 이해가 안간단다. “나도 좀 조용한 사람과 살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정 의원은 이번 공연을 앞두고 일주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야간 연습을 했다. 지난 여름엔 2집 음반을 내기 위해 새벽시간을 이용해 노래 연습을 했다. 하기야 이렇게 마음을 담아서 하는 사람을 말릴 이유도 없겠다. 이씨는 요즘 친구들을 만나면 “누구랑 사는지 모르겠어” “독신이라고 여기고 산다”고 농을 한다. 좋은 점이 있기도 하다. “남편은 자기 좋아하는 일을 밖에서 하니까 집에 와서 짜증을 내거나 신경 쓰이게 하질 않아요.”(웃음)

탤런트 하겠다고 나선 공무원 남편

이씨에게 “남편이 주책맞다는 생각은 안드냐”고 했더니 “원래 끼 많은 사람인 줄 알고 결혼해서 그다지 놀랄 것도 없다”고 했다.

두 사람은 1976년 대학교 개강파티 때 처음 만났다. 서울대 무역학과, 이화여대 영문과의 과대표들이었다. 정 의원은 오히려 이씨보다 수줍음을 더 타는 편이었다. 몇 년이 흘렀다. 대학원을 마친 이씨는 프랑스 유학을 준비하면서 맞선을 보느라 바빴다. 하루는 뜬금없이 옛 친구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나야 정두언. 제대하고 공무원 됐어. 별일 없었냐?” 몇 년 만이었다. 정 의원이 이씨 집에 들렀다가 부모님께 인사를 하게 됐고, 얼마쯤 지나면서 결혼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남편은 ‘안부나 물을까 하고 갔다가 처갓집에서 나를 사윗감으로 점찍으셨다’고 해요.”(웃음)

공무원인 정 의원을 이씨의 아버지(이상보 국민대 명예교수)는 마음에 들어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이씨의 어머니도 “다들 교회 장로님이 될 상(象)이라더라”고 하면서 좋아했다. 정 의원이 체육부에 근무하고 있던 1984년 두 사람은 결혼했다.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싸우기도 참 많이 싸웠다. 이씨는 “닭띠 둘이 만나 닭싸움 한 것”이란다.

하루는 안경을 쓰던 정 의원이 콘텍트렌즈를 맞춰 끼고 들어왔다. 이유를 물었더니 남편은 “KBS 기획 드라마의 주연급 배우를 공모하겠다는 공고가 나와 응시했고 최종 면접만 남겨둔 상태”라고 실토했다. 대학 때부터 “가수가 꿈”이라곤 했지만 이씨는 기가 막혔다. “지금이야 눈 하나 깜빡 않겠지만 그땐 충격이 컸어요. ‘난 탤런트랑 결혼한 게 아니라 공무원이랑 결혼했다’면서 엉엉 울었어요.” 시집 식구들은 물론 친정 부모까지 동원돼 필사적으로 말렸다. 결국 정 의원은 탤런트의 꿈을 접었다.

정 의원은 이때 탤런트가 될 기회를 놓친 게 정말 아쉬웠나보다. 2000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처음 낙선하고선 “탤런트가 됐다면 이미 국회의원이 됐을 텐데 다들 말려서 (국회의원이 되는 게) 늦어졌다”고 ‘속없는 소리’를 했다고 한다.

이씨 말대로 권태기가 생길 새가 없을 만큼 크고 작은 해프닝은 계속됐다. 경기도 과천의 18평짜리 아파트에서 살던 신혼 때였다. 남편은 어느날 후배 한 명을 데리고 와선 “당분간 함께 살아야겠다”고 하질 않나, 새벽 2~3시에 술 취한 친구들의 전화를 받고 뛰쳐나가기를 반복했다. 남편 때문에 이씨는 악처(惡妻)가 됐다. 그는 남편 후배를 따로 불러 “지금 아이 둘과 살기도 빠듯한데 후배님까지 같이 살 형편이 아니다”고 잘라말했고 새벽에 전화 거는 사람에겐 호통을 쳐서 다시는 전화를 못 걸게 했다.

정치인 아내

▲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의 부인 이화익씨는 화랑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미술 큐레이터만 15년 한 미술 전문가다.


이씨는 남편이 공무원으로 일할 때도 국회의원이 되고 싶어했던 것을 알았다. 정 의원은 광주에서 5선의원을 지낸 큰아버지 정성태 전 의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단다. “국회의원 당선된 뒤 인사드리러 갔더니 ‘이제 네가 남편의 절반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정치는 정치인 혼자 하는 줄 알았는데….”

2000년 국무총리 공보비서관으로 있던 정 의원은 처음 선거에 나가 고배를 마셨다. 머리를 싸매고 드러누운 건 정 의원이었고 “당신, 이 정도밖에 안되느냐. 어서 일어나라”며 호통을 쳤던 건 부인 이씨였다. “공무원 생활하다가 출마하자마자 어떻게 당선되겠어요? 선거라는 게 단시간에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지 않느냐고 했어요.” 일할 땐 최선을 다하고 노력한 다음엔 뒤돌아보지 않는다는 게 이씨의 지론이다.

이씨는 가급적 남편 일에 간섭을 않으려 한다. 2000년 남편이 한나라당 공천을 받는 문제로 골치 아파할 때도 예정돼 있던 인도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선거 때는 달랐다. 지난해 총선 전엔 3~4개월간 화랑을 큐레이터에게 맡기고 선거를 도왔다. 솔직히 그는 현재의 선거 풍토가 마음에 안든다. “국회의원은 국가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정책을 만들고 실천되도록 해야 하는데 다들 표 얻기 위해 경조사 다니는 것에 너무 에너지와 시간을 많이 쏟는 것 아닌가요? 바꿔야 하는데 표를 의식해 바꾸지 못하는 게 어디 한두 가지인가요.”

이씨는 “국회의원도 가족의 일원이고 가정이 올바로 서야 나라도 올바로 서는 것 아니냐”며 “가정을 소홀히 해야 정치인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선거 치를 때 보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정치인들이 그의 눈엔 놀랍기만 하다. “몇 달 하고 마는 것도 아닌데 저렇게 수년간 일하면 몸이 배겨날까 싶어요. 남편 건강도 걱정되고요.”

남편이 365일 쉬는 날 없이 바삐 돌아다니는 덕분에 이씨는 남편의 대타(代打)로 꼭 가야할 지역구 행사에만 참석한다. 그는 “남편 피가 원래 뜨거운 줄은 알지만 일정표를 보기만 해도 숨이 차는 것 같다”고 한다.

욕먹는 정치인?

전시회를 열고 작품을 사고 판다지만 화랑 일도 결국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제가 6년간 일한 갤러리 현대는 서울역 대합실처럼 사람들이 많이 오갔던 곳이에요. 사람 만나는 게 일이었는데 정작 지역구 분들을 대하는 건 참 어려워요.”

이씨랑 점심식사를 하러 가던 중 길에서 한 미술담당 기자와 마주쳤다. “어머, 기자님, 오래간만이에요. 지난번 전시 때 뵙고 처음이네.” 조근조근 얘기하던 그가 갑자기 수다쟁이로 돌변했다. “어쩌면 그렇게 달라지느냐”고 했더니 “원래 이게 내 모습인데 남편 관련된 일은 매사 조심스럽다”고 한다. 정치인의 아내로서 인터뷰하는 것도 이날이 처음이란다.

그는 “정치권이란 곳이 말 한마디로 천당과 지옥을 오갈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말 얘기가 나온 김에 얼마 전 정 의원이 곤욕을 치른 말 사건을 꺼냈다. 정 의원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에서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과 언쟁을 벌였고 본인의 칼럼에 “미친 X를 건드리는 게 아닌데 그걸 건드린 것이 제 잘못”이라고 썼다. 이후 한국인권운동 정치인 언어순화모임이 그를 ‘막말 정치인’으로 꼽기도 했다.

이씨 입에서 “많이 속상했다”는 말이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달랐다. “정치인이 되면 욕 먹고 온갖 풍파를 다 겪을 각오를 해야한다고 봐요. 어떻게 잘 대처할지가 중요하죠. 문제 그 자체에 대해 과민반응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정 의원의 행동이 잘했다고 보느냐고 물었더니 “정치쪽 사안이라 정확히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저 (남편이) 그런 심정이라 그랬겠지 했어요. 그래도 ‘막말 정치인’이란 것처럼 좋지 않은 이미지는 갖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씨는 “이왕 정치할 바에야 일 안하고 욕 먹는 것보다야 일하면서 욕 먹는 게 낫지 않냐”고도 했다.

정 의원의 식구들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잘 살자’는 주의다. 부모도 그렇고 아이들도 그렇다. 보름씩 해외출장을 가야 하는 엄마가 미안해서 “엄마 가지 말까?”라고 물으면 아들과 딸은 어려서부터 “엄마 하고 싶은 일인데 가”라고 했다. 요즘도 정 의원의 자녀들은 “아빠는 아빠 좋아하는 것 해야지” 하는 식이다. 이번 국회 공연을 놓고도 아빠가 좀 튀는 사람이라고 여기긴 하지만 “잘 하시라”고 할 뿐이다.

가족 모두 “내 방식대로”

▲ 정 의원 부부는 대학교 1학년 때 과대표들로 만났다. 사진은 1984년 결혼 직후 모임 자리에서.
이씨는 넉넉해보이는 인상 때문인지 남편을 위해 웬만한 건 참아줄 것 같다. 그런데 가족사를 들어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남편이 1991년부터 2년간 해외연수를 가게 됐을 때였다. 미국 워싱턴행을 주장한 건 아내였다. “조지워싱턴대 뮤지엄 스터디라는 대학원 과정을 해야겠더라고요. 다른 도시로 가자는 남편을 뜯어말려 결국 워싱턴으로 갔지요.” 정 의원은 조지타운대 공공정책대학원에서 정책학 석사과정을 밟았다. 이씨는 스미스소니언 박물관과 필립스 컬렉션 등에서 인턴십도 했다.

이국 땅에서 2년을 보내기란 쉽지 않았다. 학생이 된 아빠와 엄마는 강의를 듣고 숙제를 하면서 또 두 아이를 키워야 했다. 정 의원이 이때 “한 명이 포기하는 게 낫겠다”고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는데 이씨는 “난 포기 못한다”고 딱 잘라 말했다고 한다.

이씨는 2년 전 위암 초기 판정을 받고 큰 수술을 했다. 큰 딸이 고3이었고 남편은 낙선한 뒤였고 시어머니는 편찮으실 때였다. 다행히 수술 결과가 좋았다. 둘 사이는 전화위복이 됐다. 그전까지 부인에게 의지하던 남편도 이때부터 부인을 챙기는 쪽으로 달라졌다. “제가 하도 참아서 병이 된 것 같더라고요. 그 뒤론 절대 안 참아요.”(웃음)

지난 10월 21일 남편의 국회 공연이 있던 날 이씨는 아침 일찍 먼저 출근했다. 밥 먹고 있는 남편에겐 “바쁜 사람, 먼저 갑니다” 하고 나왔다. 말이야 이렇게 해도 아침 밥도 제대로 못 챙겨주고 옷 한 벌 살갑게 골라주지 못한 게 미안하기도 하다. “남들이 남편 보고 소탈하다고들 하는데 아무도 챙겨주는 사람 없으니 소탈할 수밖에 없지요.”(웃음)

이씨는 “남편은 주변을 잘 돌아보진 못해도 목표가 생기면 그걸 향해 달려가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서 밤 늦게 귀가해 홈페이지에 칼럼 쓴다고 딸 방에 들어가 앉아있는 남편을 보면 마음에 안들면서도 안쓰럽기도 하단다.

이씨에게 “혹시 나중에라도 정 의원이 가수나 배우로 본격 나서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걱정 없다”며 웃었다. “자기는 굉장히 노래를 잘하는 줄 아는데 제가 보기엔 예전만큼도 안돼요. 탤런트요? 그걸 왜 걱정하겠어요. 이제 나이 들어 할아버지 역, 행인1 같은 역이나 겨우 맡을 수 있을까요?” 세월이 가져다준 여유인가보다.

황성혜 주간조선 기자(coby072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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