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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 내 남편은 국회의원] 열린우리당 서갑원 의원 부인 김수정씨⑨
“정치인 사위 싫다 부모님 반대… 집 떠나 독립한 뒤 결혼”
피곤에 찌든 남편 보면 잔소리도 못해…
`남편 서갑원`은 맘에 안들어도 `정치인 서갑원`은 믿음직
‘아빠’ 서갑원
“얼굴 보기 힘들어도 우리 아빠 최고”
▲ 지난해 여름 국회의사당 앞에서 찍은 가족사진.


지난 2월 여의도 국회 기자실에 열린우리당 서갑원(徐甲源·43·전남 순천) 의원이 자료를 들고 언론사 부스마다 찾아다녔다. 의원총회장이나 브리핑 룸에서 다른 의원들이 질세라 마이크를 잡고 목소리 높일 때도 언제나 조용히 뒤에 물러서 있던 그였다. 그런데 이날은 할 말이 많아 보였다.

“내 원 참~, 지난해 후원회 정치자금, 신고누락분 등을 제외하고 늘어난 금액은 말이지, 내 아내의 수입인 1억700만원이요. 내 아내가 치과의사이거든.”

그날 오후 언론들은 서 의원을 ‘지난해 3억1900만원의 재산이 증가해 386 의원 중 재테크를 제일 잘한 의원’으로 꼽았다. 서 의원은 그날로 기자들 사이에 ‘돈 잘 버는 아내를 둔 남자’로 통하기 시작했다.

서 의원이 말한 그 치과의사 부인을 지난 10월 17일 저녁 만났다. 서울 노량진에서 우석치과를 8년째 운영하고 있는 김수정(金秀貞·38)씨다. 오후 6시반경 김씨가 진료를 마친 뒤 그의 퇴근길에 동행했다. 가게가 빼곡히 들어차 있는 골목을 지나 상가 지하에 주차해놓은 그의 차에 올랐다. 차 안에 비닐 봉지와 휴지 등이 지저분하게 널려있었다. “제가 이러고 살아요. 너무 엉망이죠?”

김씨는 운전도 다소 과격하게 하는 편이었다. 첫 만남인데도 스스럼없이 말했다. “오늘 미장원 가서 저 머리손질한 게 이 모양이에요.” “지난번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부인 모임에 갔다가 정말 놀랐어요. 저도 백화점 가서 옷 한벌 사입고 가려다 그냥 갔는데, 어찌나들 소박하던지요.”

보라매공원이 내려다보이는 아파트에 도착하니 아들 정욱(4)이가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 한자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날 출(出) 써볼게, 자 봐요. 이렇게 뫼 산(山)이 두 개 있는 거예요.” 40평 넘는 집은 정욱이만을 위한 공간 같았다. 마루와 베란다, 방 할 것 없이 정욱이의 장난감과 책이 널려 있었다.

남편이 국회의원 되고 나니

김씨는 언론에 서갑원 의원의 ‘서’자만 나와도 놀란단다. “일단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니까요. 청와대 의전비서관 할 때가 훨씬 마음 편했어요.” 정치한다고 돌아다닌 지야 오래 됐지만 남편이 국회의원이 되고 나니 큰 변화를 느낀다. “이 집을 어느 기업에서 사줬다느니, 남보다 싼 값에 전세계약한 걸 놓고 뒷조사를 했다느니…. 아, 나도 이제 이 물에, 이 길에 들어선 거로구나 했어요.”

김씨는 ‘그래, 나도 강심장이 돼야 하는구나’하며 다짐했단다.

사실 남편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에 대해 남보다 더 조심스러워하는 데엔 이유가 있다. 10년 넘게 남편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을 보좌하며 지내온 사람들이 감옥에 다녀오고, 또는 여론의 비판을 받는 걸 옆에서 봐왔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과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원 안희정씨 등이다. “역할이 바뀌었다면 우리 남편도 똑같이 그렇게 됐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친한 분들인데 마음이 너무 안 좋아요. 대통령 만들어보겠다고 동고동락했었는데 누구는 구속되고….”

여야 의원들이 몸싸움을 벌일 때도 은근히 걱정이 된다. 지난 3월 행정수도법 국회 본회의 통과를 놓고 여야가 대치했을 때였다. “조(組)를 배정받아 움직인다고 하더군요. 덩치 큰 사람이 앞에서 총알받이 되는 건 아닌가 싶더라고요.”

요즘 남편이 원내부대표가 된 뒤론 가끔씩 발언도 세게 하는 것 같아 신경이 쓰인다. 얼마 전에도 서 의원은 한나라당 유승민 의원의 비례대표직 사직 동의안 처리를 앞두고 “이거 부결시킵시다”라며 이의를 제기했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조용히 정치했으면 좋겠는데….”

그렇다고 김씨가 무조건 새가슴이 돼 놀라는 것은 아니다. 최근 서 의원은 국감에서 제2 국회 의원회관 건립을 질의했다가 “민원성 발언”이라고 시민단체로부터 욕을 먹었다. 김씨는 이에 대해 “그게 왜 욕 먹을 일이죠?”라며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대통령의 측근인 남편

▲ 김수정씨는 서울 노량진 우석치과 원장이다. 그는 남편이 대쪽 같기보다는 때론 휘청휘청하기도 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지난해 4월 총선이 끝나고 17대 국회가 열리기 직전 열린우리당 당선자들의 워크숍이 강원도 양양에서 열렸다. 저녁자리에서 서 의원이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선거운동에서) 제가 내세울 게 뭐 있었겠어요?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 그것 하나 들고 만날 다녔죠.”(웃음)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이광재 의원 등과 많이 다르다 싶었다. 부인 김씨도 주책맞을 만큼 솔직한 남편의 스타일을 잘 안다. 서 의원은 노 대통령의 386 참모 중 한 명으로 ‘친노 직계’란 꼬리표가 늘 붙어다닌다. 1992년 민주당 청년특위위원장이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수행비서로 정치에 입문했다. 그래선지 남편은 평소엔 말을 잘 안하다가도 누가 노 대통령에 대해 비판을 하면 욱 하고 발끈한다.

그는 얼마 전 당내에서 정장선 의원 등이 “대통령의 이상주의적 사고가 문제”라며 노 대통령이 연정을 제기한 것에 대해 비판하자 “대통령이 무얼 잘못했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노 대통령이 지난 8월 말 ‘임기단축’이란 발언을 한 것에 대해서도 “반어법으로 이해하면 된다”며 대통령을 두둔했다.

그런 남편을 둔 아내의 마음은 어떨까. “저도 대통령을 욕하면 기분 나빠요. 남편 입장에서 눈빛만 봐도 알 만큼 오래 모셨던 분을 누가 욕하면 당연히 화가 나겠지요. ‘그건 아니다’고 하면 되지 직접 나서서 욕하고 그러진 않으면 좋겠어요.” 김씨는 “대통령께서도 사람들이 작은 걸로 꼬투리 잡는다는 걸 알고 사사로운 건 일반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해주시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고 했다.

영·호남 부부…“돈 못벌어도 늘 바빠”

두 사람은 1995년 여름 전라남도 해남의 땅끝마을에서 처음 만났다. 김씨는 부산대 치과대학을 졸업한 뒤 병원에서 일하고 있었다. 친구들과 놀러갔다가 부산의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사람들과 그곳을 찾은 서 의원을 만난 것이다. 훤칠하게 큰 남자에게 눈길이 갔다. 그 남자가 유일한 전라도 출신이라 가이드 역할까지 자처했다. 게다가 고향인 부산에선 보기드문 ‘사근사근하고 친절한 남자’ 같았다.

“사진 교환한답시고 뒤풀이겸 또 만났어요. 그러다가….” 다섯 번쯤 만났을까. 서 의원은 곧바로 프로포즈를 했다. 1995년 부산시장 선거 땐 부산에서 계속 만났고 선거가 끝나고도 1년 넘게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주말 데이트를 했다.

하지만 김씨 부모님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딸이 결혼하겠다는 남자가 정치를 한다고 하고, 장남이고, 전라도 출신이었다. “노무현 의원의 비서관으로 있다”고 남자를 소개하자 김씨의 아버지는 “나는 정치인을 인간 취급해본 적이 한번도 없고 그 중에서도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노무현”이라고 말했다.

서 의원의 자서전 ‘온 길을 보면 갈 길을 안다’에 보면 김씨는 집안 반대가 심하자 서울로 가출한 걸로 돼 있다. “솔직하게 책을 써도 그렇지 무슨 그런 얘기까지 쓰는지. 나중에 우리 아들이 커서 뭐라고 하겠어요.” 김씨는 자신을 ‘가출소녀’로 만들어버린 게 좀 못마땅한 듯했다. “서른 살 바라보는 나이에 무슨 가출이에요, 독립한 거죠. 안 그래요?”

▲ 김수정씨는 아들 정욱이가 아빠 없이 자라는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고 한다.
당시 서 의원은 신대방동의 13평짜리 아파트를 김씨에게 내주고, 본인은 근처에 작은 월세방을 따로 얻었다. 부산에서 김씨 어머니가 올라와 “내려가자”고도 했다. 하지만 김씨 부모도 딸의 뜻을 굽힐 수 없었다. 결국 그는 1997년 4월 면사포를 썼다.

“지금은 부모 마음을 좀 이해할 것 같아요. ‘정치한다’고 하면 모두 정치꾼으로 여기셨지요. 지금은 사위가 총선에 나간다고 순천까지 지원해주러 오시지요. 싹싹한 사위를 아주 좋아하세요.”

병원은 결혼한 이듬해에 열었다. “생활전선으로 내몰려 무리해 병원을 열었어요.” 돈은 못 벌었지만 남편은 늘 바빴다. 선거 때는 선거 때라서, 선거 아닐 때는 또 아니라서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그게 남편의 직업이나 다름없었다. “마음에 안 들었겠다”고 했더니 “그러게 말이에요”라고 했다.

어쩌면 국회의원 부인들 중엔 월급 한푼 안 가져다주는 남편에게 싫은 소리 않고 생활전선에 나서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 걸까. 김씨도 바로 그 경우다. “빈둥빈둥 노는 것도 아니고 자기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했던 거잖아요. 전 제 일을, 남편은 남편 일을 각자 열심히 하며 살면 되는 거죠.”

김씨는 “남들은 부인이 돈 벌어다주면 콤플렉스를 느껴 문제가 생긴다는데 이 사람은 그런 것 하나 없었다”며 웃었다. 그런데 국회의원이 된 요즘도 월급을 잘 안가져다 준단다. “글쎄 세비는 생활비 하라고 주는 돈이 아니래요. 활동비라나요? 뻔뻔하고 당당해요. 처음 몇 달간은 한푼도 못 받다가 요즘은 가끔씩 집에 돈을 가져다 주기도 해요.”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김씨에게 “믿는 구석이 있으니 그러겠지요”라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불쌍해서 불평 참아”

김씨는 지난 대통령 선거 직후가 별 걱정 없이 가장 편안했던 때라고 한다. 그가 보기에 남편 서 의원은 앞만 보고 내달려왔다. 민주당 경선을 치렀고, 대선을 치렀고, 대통령 의전비서관으로 밤낮없이 바빴고, 총선을 치러야 했다. 그러는 사이 가족끼리 변변한 여행 한번 다녀보질 못했다.

요즘 김씨는 인상을 잔뜩 쓰고 귀가하는 남편을 보면 문득 ‘당신 지금 행복하냐’고 묻고 싶어진다. 아내로서 잔소리하고 싶을 때야 왜 없겠냐만은 일단 참는다고 한다. “아이 교육문제 등 혼자 속끓이지 않고 말하고 싶을 때가 많아요. 잔소리도 하고 싶은데 정작 피곤에 찌들어 들어오는 남편을 보면 불쌍해서 말이 안 나와요. 나 혼자 삭이고 말지 뭐, 그러고 말아요.”

그래도 상임위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남편 모습은 자랑스러운가보다. “뭐 그리 하고 싶은 게 많은지 몰라요. 없는 일도 만들어 하는 것 같아요.”

김씨는 남편이 재선, 3선 한다고 해도 밀어줄 것이란다. 지난해 총선 때도 3개월간 병원을 지인에게 맡기고 순천으로 내려가 도왔다. “생전 남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한 적 없이 살았는데 남편 위해 ‘도와달라’고 열심히 말하고 다녔었어요.”(웃음)

지난 여름 모처럼 가족끼리 해외여행을 간다고 잔뜩 부풀어 있었는데 여행사에 기한까지 대금을 치르지 못해 여행이 취소됐다. 그런 ‘남편 서갑원’은 마음에 안든다지만 ‘정치인 서갑원 의원’에 대한 믿음은 탄탄한 것 같았다. “자기 이익을 위해 잔머리 쓰는 사람은 아니에요. 이게 가야할 길이라면 손해보더라도 할 사람이고요. 앞으로도 소신있게 잘하면 좋겠어요.”

“저는 병원 나가고 아이 키우는 것밖에 모른다”더니 막상 정치 얘기가 나오니 할 말이 많은 듯했다. “병원을 운영하면서 환자 수가 준 걸 보니 경기가 나빠진 걸 피부로 실감해요. ‘국민을 위한 당’이라고 모두들 말씀하시는데 정략적으로 나서기보다는 국민을 위해 자기 이익을 조금 접어두면 어떨까 싶어요.”

그는 “정치는 현실이고 제도권 안에서 해야 하는 것”이라며 “이상을 향한다 하더라도 현실에 발을 디디고 있어야 하는데 남편은 현실주의적으로 정치를 한다고 믿는다”고 했다. 그리곤 덧붙였다. “다만 우리 남편이 너무 대쪽같이 하기보다는 때론 휘청휘청 하기도 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솔직한 아내 마음이에요.”

황성혜 주간조선 기자(coby072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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