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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 내 남편은 국회의원] 한나라당 권영세 의원의 부인 유지혜씨⑧
“정치는 다른 세상… 시늉내는 내조는 싫어”
하프 연주가로 30년, 얼떨결에 선거 치러···
내 일 열심히 하는 게 남편 도와주는 것
음악가 유지혜
레슨ㆍ연습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연주할 때 가장 행복
▲ 2001년 6월 권 의원의 미국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 졸업식.


한나라당 권영세(權寧世·46·서울 영등포구 을) 의원 집엔 수시로 책 소포가 배달된다. 권 의원이 아마존닷컴 등 인터넷 서점에 신청한 책이다. 그러면 권 의원의 부인 유지혜(劉智惠·44·하프 연주가)씨는 “당신, 이 많은 책들, 무덤에까지 가져가진 못한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책 읽는 것도 좋지만 TV 연속극이나 코미디 프로그램도 보자”고 한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이 왜 떴는지, 사람들은 저 개그를 보고 왜 웃는지 같이 보고 느끼자”는 것이다. 유씨는 TV 드라마 보는 게 책 읽는 것보다 정치하는 데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믿는다. 유씨는 “책은 나중에 은퇴하고 책방 차린 뒤 실컷 읽자”고 한다. 책방을 내고 그 안에 자그마한 카페를 만들어 책 냄새, 커피 냄새 어우러진 곳에서 두 사람이 벗처럼 늙어가는 게 유씨의 희망이다.

하프와 함께 한 인생 30년

권 의원의 부인 유지혜씨는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하프 연주를 시작, 하프와 함께 30년를 산 음악가다. ‘하피스트’라고 하면 사람들은 “와~, 좀 있는 집 자식인가보다” “그 번쩍번쩍하고 부티나는 커다란 악기 말하는 거지?”라고들 한다. 유씨는 “악기가 황금색이고 크라운도 얹혀 있으니 다들 화려하게 본다”며 “하지만 정작 음악한다는 게 보기만큼 근사한 것만은 아니다”라고 한다. 하기야 제 아무리 근사한 악기로 연주를 해도 취미가 아니라 일이 되고 나면 다른 법이겠다.

하프 연주하며 보낸 30년에 비하면 결혼생활은 그 절반밖에 안된다. 1991년 권 의원과 결혼했으니 15년째다. 게다가 ‘정치인의 아내’가 된 지는 3년밖에 안된다. 권 의원이 재보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2002년 8월부터다.

“도와주진 못해도 방해는 하지 않는다”는 게 정치인과 음악인으로 사는 권 의원 부부의 생활신조다. 그렇다고 ‘음악가 유지혜’만을 고집하며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재선의원이 된 정치인의 아내로서 내조도 해야하고, 초등학교·중학교에 다니는 두 딸의 엄마 노릇도 해야한다. 또 그는 일주일에 열댓 시간 넘게 학생들을 가르치고 이따금씩 무대에 올라야 해서 연주연습도 해야한다. 유씨는 “차라리 음악만 열심히 할 땐 마음이 편안했다”며 “대체 무얼 하며 지내는지 정신없이 하루하루가 지나간다”고 한다.

음악인에서 정치인의 아내로

▲ 한나라당 권영세 의원의 부인 유지혜씨는 하프와 함께 한 시간만 30년이 되는 음악인이다. 유씨가 잡고 있는 것은 본인의 악기이고, 뒤에 있는 하프는 제자 교습용이다.
지난 10월 7일 서울 여의도의 자택에서 오전 강의를 마치고 온 유지혜씨를 만났다. 저 멀리 국회의사당이 바라다보이는 고층 주상복합아파트였다. 아이들이 아빠의 직장인 국회의사당을 향해 ‘아빠, 안녕’ 해도 되겠다고 하자 “국회의사당과 너무 가까워서 좋기도 하지만 너무 코앞이라 (남편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한국 정치의 터전인 여의도 한복판에 살지만 정치계는 그에겐 늘 먼 동네 같다. 하프야 어려서부터 좋아서 배우고 연주했다 하지만 ‘정치인의 아내’란 직업은 갑자기 주어졌다. 검사로 일하다가 사표를 내고 미국 유학을 떠났던 권 의원이 귀국하자마자 2002년 8월 재보궐 선거에 출마한 것이다. 당시 유씨의 아버지인 유도재 전 대통령 총무수석은 딸에게 “네가 적응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 단단히 각오를 해야한다”고 했다.

사실 처음 남편이 정치한다고 할 땐 일단 거부감부터 들었다. “꺾을 수가 없었어요. 국회의원 금배지가 목표도 아니고 그걸 통해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고 하는데….” 어차피 갈 길이라면 받아들여야겠다고 여겼다. 유씨는 “남편은 고집을 부리진 않지만 알고 보면 고집대로 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첫 선거는 얼떨결에 치렀다. 미국서 귀국하자마자 짐도 정리하기 전에 “권영세 안사람입니다. 잘 부탁합니다”는 말을 하며 하루종일 걸어야 했다. “그땐 아무 개념이 없었어요. 지구당이란 게 있는지도 몰랐고 사무국장과 여성부장이 무슨 일 하는 건지도 정말 몰랐어요. ‘당원’이라고 하면 왠지 ‘공산당원’이 떠올라 어색했고요.”

지역구 관리… “시늉은 안할 것”

유씨의 아버지 유도재씨는 유한양행 CEO,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 월드컵 유치위원회 위원, 청와대 총무수석 등을 지냈다. 유씨는 아버지가 공무원을 할 때 어머니의 삶이 자유롭지 않고 제약이 많은 걸 보았다. 하지만 정치인과 공무원은 또 다른 것 같았다. 그 배우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더더군다나 달랐다.

“장관이 중요한 자리에 참석 못하면 차관이 대신 가잖아요. 그런데 정치인의 경우는 부인이 마땅히 가야하는 것으로 돼 있데요. 월급은 ‘국회의원 권영세’ 앞으로 나오는데 배지만 안달았다 뿐이지 정치는 아내와 두 명이 함께 하는 것이더라고요.”

처음 선거에서 당선된 뒤 숨 좀 돌릴까 했더니 곧바로 대선이 찾아왔다. “국회의원이나 지구당 위원장의 부인들은 ‘이렇게 해야한다’ ‘아니다, 저렇게 해야한다’고 각기 다른 조언을 주시데요. 지역마다 패턴이 다르고 과거 패턴을 무조건 답습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겠다 싶더라고요.”

▲ 두 사람은 만난 지 2년 만인 1991년 결혼했다.
사실 처음엔 마음고생도 컸다. 하프 연주만 하고 살아온 그에게 정치의 세계는 낯설기만 했다. 척 보기만 해도 ‘부잣집 딸’ 같은 인상인데 게다가 하피스트라는 직업을 가진 그를, 사람들은 ‘다른 세상 사람’처럼 바라봤다. 온몸을 던져 열심히 뛰는 다른 정치인 부인들을 보면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나한텐 음악이라는 본업이 또 있지 않나’ 하고 합리화를 했지만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가식적인 일을 해야할 땐 마음이 불편하기만 했다. “수박이나 떡 한쪽 못 갖고 가면서 경로당 같은 곳에 가서 인사하면 ‘저 사람 왜 와서 귀찮게 하는 거야’ 하는 눈으로 보는 어르신도 있어요.”

‘정치인 아내’로서의 정체성은 아직도 고민 중이지만 그래도 요즘은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어디 가서 설거지 하고 밥 하는 것으로 과시하진 않으려고 해요. 그러는 게 지역주민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지도 않아요. 한결같이 할 수 있고 완전히 진심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쇼 같은 건 안하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안되는 걸 억지로 해서 괴로워하지 말고 내 방법을 찾자고 말이에요.”

그는 “어머니가 편찮으시다고 학교 안가고 다리 주물러주는 아들이 되지 말고, 우리는 그럴 때일수록 학교 가서 더 열심히 공부해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는 아들이 되자”고 권 의원에게 말한다. 유씨는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치고, 문화를 평소 잘 접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를 전하는 게 배운 걸 사회에 환원하는 길이라 여긴다. 하지만 막상 추진하다보면 ‘정치인의 부인’이라 제약이 따르기도 한다. “지역구에서 평소 음악을 접할 기회가 없는 아이들을 위해 학교 콘서트를 열어 연주를 직접 하려고 했어요. 신이 나서 알아봤는데 선거법상 기부행위라 안된다고 하더군요.”

“키다리 아저씨 같은 존재”

서울대 음대 시절 유씨는 “유지혜는 영세형을 만나야 저 뻗치는 기가 죽을 거야”라는 말을 들었다. 그만큼 두 사람 사이에 지인들이 많았다. 1989년 한 지인의 소개로 만났는데 이미 서로 이름을 많이 들어온 터였다.

당시 수원지검 검사로 있던 권 의원은 민숭민숭한 데이트 상대자였다. 유씨는 “데이트도 제대로 못하고 결혼했다”고 한다. 권 의원은 주말에 약속을 해놓고는 갑자기 “사건 많아서 못 가겠다”며 펑크를 내기 일쑤였다. “그리고는 허구한날 전화만 거는 거예요. 수원에서 서울 오는 게 뭐 그리 멀다고 핑계는 댔는지 모르겠어요.”

그렇다면 곱상하고 예쁜 하피스트의 마음을 앗아간 힘은 어디에 있었을까. 유씨는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남자는 정말 아니었다”며 웃었다. 그러더니 “내게 남편은 소설에 나오는 ‘키다리 아저씨’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다. 잔잔한 카리스마와 사랑을 뿜어내며 늘 그 자리에 서 있는 나무 같은 남자라는 말 아닌가. 지금이야 “내가 키다리 아저씨를 만난 줄 알았는데 살아보니 키만 크더라”고 농을 하지만 남편은 늘 잔잔하고 든든한 존재였다고 한다. 음악하는 데 마이너스 되는 사람은 안 만나겠다고 했지만 “권영세를 만났고 그 사람이 검사였으니 어찌할 수 없었다”고 한다.

“불의에 맞서서 싸울 땐 싸워야”

권 의원은 검사 시절 “검사스럽지 않다”는 말을 들어왔다. “일과 상관없이 풍기는 젠틀한 인상 때문이었겠죠. 하지만 전 이 사람의 강한 면을 알아요. 사람이 업다운이 좀체 없어 재미없을 수도 있는데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힘을 갖고 있어요. 저는 싸우는데 그이는 안싸우는 식이죠.”

권 의원은 2003년 국감 때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소속으로 휴대전화 도청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해왔다. “인상은 차분한데 물고 늘어지는 걸 보면 보통 강적이 아니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권 의원은 최근에도 한나라당 불법 도·감청 조사단장을 맡았다. 지난 5월엔 한나라당 오일게이트 진상조사단장을 맡아 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 사업과 관련, 청와대가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이럴 때면 유씨로선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 그래도 남편을 믿는다. “주위에서 ‘괜찮겠지?’ 하며 걱정하는 분들이 있어요. 하지만 전 알아요. 남편이 감(感)이나 설(說)로 뭘 터뜨리는 사람이 아니란 걸요.”

그런데도 권 의원을 보고 “정치판의 폭로는 지긋지긋하다”며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는 “정치인들은 싸우기만 한다는 일반인의 생각도 잘못됐다”고 꼬집었다. “왜 정치하면서 싸우지 않길 바라죠? 안싸운다는 것은 독재 치하에서나 가능한 일 아닌가요. 불의에 맞서 싸우는 건 오히려 응원해주고 싶어요. 좋은 게 좋다면서 대충 지나가는 것은 아니지 않나요. 지저분하게 싸운다면 문제이겠지만요.”

그는 정치에 별 관심 없다고 하지만 매일 한 번씩은 인터넷으로 남편 이름을 검색해본다. “뉴스 검색 순위도 보는데 남편 관련 기사가 많이 읽히면 은근히 좋더라고요.”(웃음)

유씨는 인터뷰를 하면서 “다른 정치인의 부인들처럼 곡절이 많거나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아오지도 않아서 인터뷰할 게 없다”며 “솔직히 ‘남편에게 도움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나왔다”고 했다. 남편 권 의원도 “우리처럼 밋밋하고 잔잔하게 사는 정치인 부부도 있는 거지, 뭐” 했다고 한다.

유씨는 “평범한 아내 입장으로 남편이 굳이 걷지 않아도 될 길을 걷는 것 같아 안쓰러울 때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남편이 “정치 잘한다”고 칭찬받을 땐 자신도 가슴속부터 행복감이 전해온다고 한다. “전 무대에서 하프 연주하고 청중의 박수 받는 것만 행복한 건 줄 알았거든요. 요즘은 작은 것에 다 감사해요. 화장도 않고 휴대전화 달랑 들고 애들이랑 남편이랑 영화관에 가서 팝콘 살 때도 순간 감사하고요.”

유씨는 “내 자신에 솔직하고 내 일에 열심히, 그렇게 살려고 한다”고 말한다. “요즘 보면 돈을 어떻게 쓰는지를 문제삼지 않고 재산이 있으면 악, 없으면 선으로 가르는 시각도 있어요.” 그는 “저희도 별로 있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없는 척하는 것도 안한다”고 했다. “가지고 있던 가구를 내버릴 수도, 십수년 쓰던 하프의 금칠을 벗길 수도 없는 거잖아요. 내 생긴 대로, 사는 데 충실하고 욕심을 버리자,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한결 편안해지는 것 같아요.”

유씨는 자그마한 체구에 나지막한 목소리를 갖고 있었지만 솔직하고 강단이 있어 보였다. 키와 몸무게를 물으니 “절대 말 못한다”며 “하도 작으니까 선거 때 나가면 ‘불쌍해보인다’면서 어르신들에게 동정표를 받기도 한다”며 웃었다.

황성혜 주간조선 기자(coby072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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