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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 내 남편은 국회의원] 열린우리당 정장선 의원의 부인 이성숙씨⑦
“정치는 벼락치기 안 통해… 평소에 잘해야죠”
평택 터줏대감으로 20년 교사생활... 이웃이 모두 지역구민, 삶 자체가 선거운동

든든한 두 아들
▲ 지난해 겨울 눈 내리는 날 나들이 갔을 때.


열린우리당 정장선(鄭長善·47·경기 평택시 을) 의원의 부인 이성숙(李星淑·41)씨는 경기도 평택 한광여중의 사회·지리과 교사다. 교사생활이 햇수로 20년째다. 몇 년 전 식중독으로 배탈났을 때 한 번을 빼곤 결근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정치인 배우자’ 역할은 어떻게 할까.

사실 그는 삶 자체가 선거운동이다. 1995년 남편이 경기도의회 의원으로 출마했을 때부터 빳빳한 1000원권 새 지폐를 준비해 두 아들과 택시 타고 등교한 지 10년이 됐다. “기사님, 힘드시죠?” “오늘 날씨 참 좋네요” “요즘 손님이 줄었다면서요?”….

이웃 아주머니처럼 너스레를 떠는 그에게 택시기사들도 마음의 문을 연다. 내릴 때쯤 되면 이씨는 “정장선 의원의 안사람 된다”고 자기소개를 한다. 택시기사가 거스름돈을 주려고 하면 “고생하시는데 커피값 하시라”며 사양한다. “오늘 좋은 하루 되세요. 기사님, 감사합니다.” 두 아들 한범(16)과 한얼(11)이는 택시를 타면 갑자기 정숙해지고 택시기사들에게 깍듯이 인사한다. 정치인 남편과 아빠를 둔 가족의 아침 등교 풍경, 남편인 정 의원은 이런 가족의 헌신을 알까?

한번은 두 아들이 택시 뒷좌석에서 투닥거리며 다퉜다. 이씨가 택시에서 내리면서 아무 말을 하지 않자 아이들이 물었다. “엄마, 오늘은 왜 아빠 얘기 안했어?” 이씨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이놈들아, 니들이 그렇게 싸우면 오히려 (아빠) 표 깎인다. 모른 척하는 게 아빠를 도와주는 거다.”

▲ 열린우리당 정장선 의원의 부인 이성숙씨가 경기도 평택의 한광여중 제자들과 활짝 웃고 있다.
“교사로 정년 퇴직할 것”


장대비가 쏟아지던 지난 9월 30일 평택행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한광여중으로 이씨를 만나러 갔다. 교무수첩을 들고나온 그가 복도가 쩌렁쩌렁 울릴 만큼 큰 목소리로 인사했다. 그는 이화여대 사범대학 생활학과(지리 전공)를 졸업한 뒤 1986년부터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다.

주변에선 “재선의원 사모님인데 교사 일을 그만둘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말한다. 그러면 이씨는 “정년퇴직 때까지 일할 것”이라고 답한다. 정 의원도 “학교에서 아이들 열심히 가르치는 게 날 돕는 일”이라고 한다. 이씨는 “학교에서 아이들과 지내며 에너지를 얻고 아이들을 대하면서 많이 배우게 된다”고 한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만약 남편이 잘못돼도 제가 경제적 뒷받침을 할 수 있고요. 항상 내려올 각오를 해요. 남편도 정치 잘못하면 국민의 심판을 받아서 내려오는 것이라고 여겨요.”

그의 직업은 두 개다. 낮에는 중학교 교사요, 새벽과 밤에는 정치인의 아내로 뛰어다니니 말이다. 남편이 정치하면서 생긴 그의 특기는 달걀 삶기와 빵 굽기. 요즘도 자원봉사자 행사 때면 달걀을 삶지만 17대 총선 땐 하루에 달걀을 200개씩 삶았다고 한다. 남편을 돕는 사람들의 간식거리를 그렇게 마련했다.

주말이면 이씨는 결혼식이나 칠순 잔치, 체육행사에 다니느라 남편 못지않게 바쁘다. 지난 주말에도 평택 농악행사, 호남향우회, 팽성 성당, 축구대회 등을 다녔다. 인터뷰하는 동안에도 팩스 한 장이 들어왔다. 10월 1일부터 3일간의 일정표였다. 체육대회, 고희 잔치, 장애인 행사, 병문안, 스님 입적식….

결혼식을 하도 많이 다니니 결혼식장의 주차요원들이 이씨와 수행비서가 부부인 줄 알더란다. “다른 정치인 부인들은 어떻게 하시나 몰라요. 옆집 사람도 결혼식에 가면 3만~5만원씩 내는데 맨 입으로 다니려니 정말 힘들데요. 선거철엔 오히려 안가는 게 마음이 편해요. 법이 바뀌어서 좋은 점도 많은데 현실적이지 않은 점도 있는 것 같아요.”

이씨는 지역 일을 보고 나면 남편에게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생색 내려고 ‘당신보다 내가 가면 더 좋아함’이라고 보내요. 그러면 ‘수고했음’ ‘잘했음’ 이렇게 답이 와요.”(웃음)

같은 선거라지만 도의원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는 확실히 달랐다. “총선 나간다니까 ‘사모님 일정’ 뭐 그런 게 나오고 수행비서도 붙더라고요. 16대 선거는 얼떨결에 치렀는데 17대 땐 인사드리면 반겨주실까 싶어 더 조심스럽고 어렵데요.”

말이야 이렇지만 선거전에 임하는 태도는 베테랑급이다. 새벽 3시 반부터 움직인다. “따뜻한 보리차를 끓여 보온병에 담아가요. 새벽 거리를 청소하는 분들이 교대하는 시간에 맞춰 가서 드리지요. 새벽기도도 가고 약수터에도 들러요.”

그래도 오전 7시 반쯤 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학교에 출근한다. 교사에서 정치인의 아내로 되돌아가는 시각은 오후 6시부터다. 퇴근한 뒤 구역별로 나눠 상가를 방문하고 장애인들을 만나 평소 배워온 수화(手話)로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그는 “인사하고 다니다 보면 고마운 분들이 너무 많다”며 “간절한 마음이 들어선지 정말 나 스스로 낮아지고 겸손해진다”고 했다.

▲ 지난 여름 캐나다로 가족 여행을 떠났을 때.
평택 터줏대감은 부인 이씨


사실 출신성분으로 따지면 초등학교, 중학교를 이곳에서 다녔던 정 의원보다 이씨가 더 평택의 터줏대감이다. 그는 평택에서 태어나 한광여중, 한광여고를 졸업했고 그의 아버지도 한광고에서 40여년간 교사로 일했다. 학생들을 20년간 가르쳐오다 보니 선거 땐 학부모와 제자들이 우군이 되기도 한다. 그의 동네 친구, 학교 친구들은 물론이고 제자의 학부모, 아이들의 학부모 모두가 관리대상인 지역구민이다. “아버지는 과거 제자들을 찾아가 ‘우리 사위 좀 뽑아달라’고 해요. 선거 때 인사 다니다보면 ‘안녕하셨어요? 저희 딸이 선생님에게 배웠대요’ 하면서 손을 꼭 잡는 분들도 계세요.”

듣고 보니 정 의원은 정말 부인 복도 많다. 이씨는 “아무래도 제가 평택 오리지널 출신인 걸 보고 (남편이) 결혼한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고 농을 했다. 그는 기자를 평택역에 데려다주면서 “여기 다 우리 협력업체들 아니냐”며 웃었다. 하지만 때론 지역구를 벗어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겠다. “사실 여고 친구들이 놀러가자고 하면 ‘애들아 천안도 너무 가깝다. 저기 머얼~리 가자’고 해요.”(웃음)

세 번 만나고 결혼 결정

사실 정 의원 부부는 남들처럼 내세울 만한 연애담 하나 없다. 두 사람은 중매로 만나 두 달 만에 결혼했다. 정 의원은 “교사 봉급이 적지 않냐고 물었더니 ‘하는 일에 비해 많이 받는 것 같다’고 수줍게 답하는 데 매력이 있더라”며 “아무래도 내 시커먼 눈썹을 보고 반한 것 같다”고 농을 한다. “이 사람은 만날 눈썹 얘기예요(웃음). 처음 선본 남자는 저와 같은 교사라 싫었고 고등학교 선생님이 소개해줘서 두 번째로 선본 사람이 남편이었어요.”

선생님이 데이트하는 걸 훔쳐본 학생들은 “와~선생님 연애한다”고 떠들었고 세 번 만난 뒤 결혼약속을 했다. 주변에선 이씨에게 “신랑이 청와대에서 일하니 시집 잘간다”고 했다. 1988년 당시 정 의원은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국회에서 일하다가 대통령 영부인을 보좌하는 비서실 정무과장으로 있었다.

결혼은 했지만 두 사람은 서먹서먹하기만 했다. 남편은 휴일도 없이 일했고 밤 12시 전에 귀가한 적이 거의 없었다. 서울 청운동 사택에서 신혼 살림을 하느라 이씨는 매일 서울에서 평택으로 출퇴근해야 했다. 시동생 두 명과도 한집살이를 했다. “신혼 때 찍은 변변한 사진 한 장 없어요. 남편은 그때 학교 끝나면 집에 가 있으라면서 친정도 잘 못다니게 하더라고요. 내 이렇게 살려고 결혼했나 후회했었어요.”

신혼 재미를 보기 시작한 것은 큰 아들 한범이를 낳은 뒤였다. 몇 개월 휴직하고 아이를 기르다보니 남편과도 정이 새록새록 드는 것 같았다. 정 의원도 점점 더 부인을 살갑게 대했다.

그러다 1995년 어느 날 정 의원이 청와대에 사표를 내고 무소속으로 경기도의회에 출마하겠다고 했다. “조그만 건 내가 이겨도 큰일은 남편을 따르자”는 게 이씨의 생각이었다. 남편은 그렇게 하고 싶어하던 지방의원을 시작했다. 하지만 월급은 끊겼다. 이씨의 교사 월급만으로 부모님께 생활비를 드리고 한 가족 살림을 책임지기엔 빠듯했다. 지금껏 정 의원은 그때 군소리 없이 자신을 따라준 아내에게 고마워한다.

정치엔 무관심… “지는 게 이기는 것”


이씨는 정치 자체엔 별 관심이 없다. 정치 사안에 대해 인터넷을 일일이 찾아보지도 않는다. 복잡한 법안 내용도 잘 모르겠다. 정 의원에게 팩스로 문서가 오면 ‘요즘 남편이 이런 일을 하는구나’ 할 뿐이다. 대통령 탄핵, 국가보안법 폐지 등에 대해서도 학생들에게 원론적으로 가르치고 토론을 벌일 뿐이다.

현재 열린우리당 제4정조위원장을 맡은 남편에 대해 “부동산 문제도 어느 정도 안정돼 가는 것 같아 흐뭇하다”고 했다. 물론 그런 그도 속상할 때가 있었다. 지난해 남편이 같은 당 유시민 의원으로부터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라는 말을 들었을 때였다. 당시 정 의원은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 이전 특별법 위헌결정을 승복하고 국정을 쇄신해야 한다”고 했다. 얼마 후 유 의원은 “잘못했다”고 공개사과했다. 이씨는 “그때 남편이 참고 대응을 잘한 것 같다”며 “지는 게 이기는 것이고 뭐 그런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지난 6월 정 의원이 국정혼선과 관련해 “노무현 대통령의 이상주의적 정책이 문제”라고 지적했을 때도 당 안팎의 비난을 받았었다. 평소 소탈하고 사람 좋기로 알려진 사람이 쓴소리 하니 무게감이 더 실렸다는 평도 있었다. 하지만 아내 입장에선 좀 달랐다.

“남편이 전화 통화하는 걸 옆에서 들었는데 여러 개 말한 것 중 한 가지가 크게 부각돼 오해를 사게 될 땐 안타깝더라고요. 목소리 내야할 땐 내야겠지요. 전 할 말은 일단 아껴뒀다 해야 무게감이 실리는 게 아니냐고 해요.”

이씨는 “홈페이지의 의정일기도 민감한 사안 빼고 애들 얘기나 쓰라”고 남편에게 코치한다. 그러면 정 의원은 “그러면 어디 그게 의정일기냐”고 한다. “전 동네 아줌마의 한 사람으로서 남편에게 얘기할 뿐이에요. 내조라는 게 뭐 다른 게 있겠어요. 남편 마음 편안하게 해주고 집안에 신경쓸 일 없게 해 바깥일 잘 하도록 하는 거죠.”

‘짠돌이’ 남편

평소 푸른빛 스트라이프 셔츠에 깔끔한 양복 차림을 하는 정 의원은 “증권가 멋쟁이 같다”는 말을 듣곤 한다. 한데 30평짜리 아파트의 한구석에 있는 안방엔 장롱 하나 없었다. 조립식 옷걸이에 양복 몇 벌, 셔츠 몇 벌이 걸려 있었고 벽에 달린 옷걸이에 넥타이가 열 개 정도 걸려 있었다.

이씨는 “애들도 아빠는 소금물처럼 짜다면서 ‘짠돌이’ ‘소금물’이라고 흉을 본다”며 “여기 이 침대도 국회의원 처음 당선되고 조르고 졸라 마련한 것”이라고 했다. 침대 옆 낡은 화장대 위엔 화장품은 없고 화장품 샘플만 잔뜩 모아놓은 통이 있었다. “화장품은 숨겨놓았냐”고 했더니 이씨는 머쓱해하며 서랍을 열어 화장품 한 개를 내보였다. “저 정품도 써요. 여기 있잖아요.” 얼마 전 정 의원이 외국 다녀오면서 사다줬다는 눈가 주름방지용 크림이었다.

이씨는 옷차림이나 집안 장식엔 별 관심이 없다. 하지만 주변 사람에게 퍼주는 것만큼은 누구보다 잘한다. 명절 때 선물이라도 받으면 얼른 스티커를 떼내어 다른 곳으로 보내 선물 돌리기 하는 게 그의 장기란다.

인터뷰하던 날 아침 일찍 정 의원에게서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부인이 새벽부터 식사준비를 하고 있으니 인터뷰 끝나면 꼭 밥 먹고 서울 올라가라’는 내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서울서 내려간 기자를 위해 닭죽, 호박죽, 갈비찜, 샐러드, 송이버섯국을 차려놓았다. “갈비찜에 넣은 밤은 친정 아버지가 까줬고 송이버섯은 남 줬다가 국 끓이려고 도로 한 개 얻어왔다”며 웃었다. 물론 정치하는 남편을 위한 아내의 마음이겠다.

이씨는 이래저래 남편 흉을 보더니 은근히 자랑도 했다. “백두산 가서 딴 야생화를 엽서에 붙여서 ‘늘 고맙다’고 써서 줬어요. 제가 이 얘기했더니 친구들이 남편 바가지를 왕창 긁었대요.” 하기야 남편을 좋아하지 않고선 하라고 해도 저렇게 못하겠다 싶다.

“정치는 정말로 벼락치기가 잘 안 통하는 것 같아요. 사람 사는 게 원래 평상시 모습으로 평가 받는 거잖아요. 평소 삶을 잘 살아야죠.”

황성혜 주간조선 기자(coby072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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