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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 내 남편은 국회의원] 한나라당 김희정 의원의 남편 권기석씨⑥
“의정활동땐 무서워도 제 앞에선 애교만점 신부죠”
주말이면 지역구 동행 확실한 외조, 집안살림·요리도 한 수 위
힘든 일정 지켜볼 땐 안쓰러워… 출산 계획은 국회 일정에 맞춰서
“살림도 안하는데 생활비는 왜 줘?”
▲ 결혼전 남이섬에 겨울 나들이 갔을 때
지난해 4월 15일 부산 연제구 한나라당 김희정(金姬廷·34) 후보자의 사무실. 김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 사람들은 얼싸안고 기뻐하며 만세를 불렀다. 이때 사무실 뒤편 먼발치에서 김 당선자를 보며 박수를 치는 한 자원봉사자가 있었다. 당시 남자친구였고 지금 김희정 의원의 평생 반려자가 된 남편 권기석(權奇錫·39·LG CNS 차장)씨였다. 마음이야 당장 달려가 여자친구를 와락 껴안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선거기간 내내 남자친구 티를 내지 못하고 사무실 근처에도 못가며 가슴앓이를 했던 그였다.

권씨가 국회의원에 당선된 여자친구의 손을 꼭 잡아준 것은 밤 12시가 한참 넘어서였다. 대견하고 고마울 뿐이었다. 실은 남자친구라며 드러내놓고 선거운동을 도울 수 없어서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모른다. 자원봉사자로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여자친구의 지지 유세를 지원할 땐, 그래도 도울 수 있어 기뻤다.

2005년 5월 28일, 1년 전의 국회의원 당선자와 자원봉사자가 국회에서 웨딩마치를 울렸다. 국정감사장에서 자료와 증거를 대며 매섭게 질문을 퍼붓던 ‘미스 포청천’은 면사포를 쓰고 ‘5월의 신부’가 됐다. 주례를 맡은 김원기 국회의장은 “신랑·신부와 양가의 경사이자 우리 국회의 경사”라며 “젊고 어여쁜 처녀 국회의원이 의원동산에서 혼례식을 올리는 아름다운 역사는 57년 의정사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제 김 의원이 임신을 해도 국회의원으로선 첫 기록이요, 아이를 낳아도 국회의원으로선 첫 기록이 되는 셈이다.

지난 9월 27일 밤 서울 마포구에 있는 김 의원의 신혼살림집을 찾아갔다. 거실의 평면TV와 소파 등 몇 가지를 제외하곤 각자 쓰던 살림을 합쳐놓았단다. 베란다엔 자전거 두 대가 놓여있었다. 현재 남편 권기석씨는 LG CNS의 하이테크 사업본부에서 차장으로 있다. 창고 입출고나 공정 과정을 자동화하는 무선인식 기술을 개발하는 엔지니어다.

권씨가 약간 어색한 듯 악수를 청했다. 김희정 의원은 악수할 때 손이 아플 정도로 꽉 잡는데 남편 권씨는 그렇지 않았다. 국감 얘기부터 꺼냈다. 지난해 10월 정보통신부 국감장이었다. 복제 휴대전화를 들고 나온 김희정 의원이 두 대의 휴대전화 벨이 울리는 상황을 시연하면서 정보통신부 진대제 장관에게 “장관은 휴대폰 복제가 성행한다는 사실을 언제 알았느냐”며 매섭게 몰아붙였었다. 국감장 뒤편에선 나이 든 공무원이 “딸내미 뻘 되는 의원에게 호되게 당하는구먼”이라며 혀를 찼고 다들 “정말 간단치 않다” “무시무시하다”라고 말했다. 그런 부인을 남편은 어떻게 생각할까.

“객관적 입장에선 야무지고 날카롭다는 생각이 들어요. 남편으로서 보면 좀 달라요. 조금 더 부드럽게 하는 게 낫지 않느냐고 하면 ‘이렇게?’라고 물어요.”(웃음)

남편 권씨 덕분인지 김 의원이 요즘 한결 부드러워 보인다. 최근 김 의원은 연두색, 연한 하늘색 등 밝은 빛깔의 재킷을 부쩍 많이 입는다. 권씨가 “새 신부이고 젊고 여성이고 하니 더 밝게 입어도 괜찮지 않겠느냐”고 코디를 한 덕분이다.

●●“지역구 가면 술잔 마다할 수 없어”

▲ 김희정 의원의 남편 권기석씨는 "정치자금은 마련해주지 못해도 아내 정치하는 것은 돕겠다"고 말했다.
결혼한 지 넉 달, 부인이 국회의원인 커플의 신혼생활을 들여다보자. 두 사람은 각자 일정이 잡히면 이메일로 즉각 정보를 교환한다. 그렇게 안하면 얼굴을 마주할 짬을 내기가 어렵다. 국회와 당을 오가느라 바쁜 김 의원은 불쑥 남편에게 전화 걸어 “오빠야, 나 갑자기 문상갈 일 생겨 부산 내려가” 한다.

남들은 떨어져 있다가도 주말이면 만난다는데 이 커플은 주말이면 헤어진다. 김 의원이 매주 금요일 밤이면 지역구 부산으로 떠나 일요일 저녁에 돌아오기 때문이다. 물론 남편이 김 의원의 지역구 방문 때 동행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래서 권씨는 부부가 동참할 수 있는 주말 지역구 행사엔 빠지지 않는다. 평일엔 회사에서 일하고, 주말엔 아내를 위해 또 일하는(?) 셈이다.

“업무상 술자리가 있어도 요즘은 다들 술을 자제하는 편이죠. 하지만 부산 가서 어르신들이 정겹게 따라주는 술은 마다할 수 없어요.” 남의 속도 모르고 사람들은 “우리 의원님 남편은 참 술도 잘하게 생겼다”며 술잔을 채워준다. 183㎝, 90㎏의 건장한 체격을 누가 탓하리요. 가정의 달인 5월, 권씨는 지역민들 앞에서 ‘여행을 떠나요’ ‘독도는 우리땅’ 같은 노래를 목청껏 불렀다. 연제구 건강달리기 대회, 부산시 국민생활체육대회, 전국 민속연날리기대회 등 행사가 참 많기도 많았다.

“부산 지역구를 몇 번 내려가보니 ‘이렇게 힘든 걸 어떻게 (아내가) 일주일에 한두 번씩 하나’ 싶었어요. 갑자기 쓰러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도 들고요. 제가 많이 아껴줘야죠.” 권씨 표정이 하도 진지해 ‘닭살 커플’이라고 흉볼래도 흉볼 수가 없었다.

정치야 부인이 한 수 위겠지만 집안 살림이나 요리는 남편이 한 수 위다. 김 의원의 동생들에게 첫 신고하던 날에도 그는 스파게티 면과 소스, 다진 고기에 식기 세트까지 싸들고 갔었다고 한다. 얼마 전 김 의원의 남동생 생일 축하 겸 집들이 땐 아스파라거스 수프, 샐러드, 스파게티, 스테이크로 양식 풀코스를 만들어 보였다. 김 의원은 “야채를 사각모양으로 칼질하는 걸 보면 놀랍다”고 자랑한다.

그렇다고 일주일에 한두 번이 고작인 ‘집에서의 식사’를 권씨가 준비하는 건 아니다. 차를 끓여내오는 것도 과일을 깎아주는 것도 더 피곤한 사람을 위해 덜 피곤한 사람이 해주는 식이다. 인터뷰 도중 김 의원이 사과와 약과, 복분자 주스를 내왔는데 잠시 후 권씨는 “밤 늦게 다니느라 피곤하겠다”며 독일제 비타민 알약을 물에 타왔다.

●● 007팅으로 2003년 만나…“정치 코드 맞아”

▲ 지난해 4·15 총선날 당선이 확정된 후, 당시 권기석씨는 남자친구 신분을 속이고 자원봉사자로 일했다.
경북 의성 출신인 권씨는 중학교를 마치고 파독(派獨) 간호사인 어머니를 따라 독일로 건너간 동포 1.5세대다. 독일 중부의 아헨(Aachen)공대에서 통신공학과 전기전자공학으로 학사와 석사를 마쳤다. 대학 연구소에 연구원으로 있다가 2000년 귀국하면서 LG CNS에 입사한 것이다. 요즘 그는 검찰청에서 독일어 통역 자원봉사도 하고 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2003년. 권씨의 어머니 친구와 김 의원 어머니의 소개를 통해서였다. 주선자 없이 당사자끼리 전화로 연락해 만나는 소위 ‘007팅’이었다.

“한나라당 부대변인이라기에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부대변인직을 가진 사람이 30명 가까이 되더라고요. 뭐 대단한 것 아니구나, 편안하게 생각했었어요.” 만남이 늘면서 점점 김 의원에게 마음이 갔다. 김 의원은 당시 국보법 폐지 논란이나 이라크 파병안 처리 등 정치적 사안에 대해 물어봤다. 일종의 ‘코드 심사’였을까? 권씨는 “제가 중도보수 쪽에 심정적으로 가깝다보니 (코드를 맞추는 데엔) 문제없었다”고 한다.

사랑에 빠진 연인에게 제약이란 없다. 국경도 넘고 나이 차도 극복한다는데 데이트 시간을 마련하는 게 대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어려웠다. 지역구 다녀온 여자친구를 공항에 데리러 나가서 서울로 들어올 때까지 만났고, 밤늦게 콩나물 국밥도 사먹여 들여보냈지만 말이다.

지난해 1월 김 의원이 총선 출마를 선언하고 한나라당 공천을 받은 뒤엔 더욱 그랬다. 전쟁에 돌입한 여자친구 앞에서 “만나달라”고 하는 것은 사치였다. 권씨는 주말이면 김 의원이 있는 부산으로 내려갔다. 사실 외조(外助)는 이때 시작됐다. 출마의 변을 쓸 때도 의견을 나눴고 토론회 나가는 김 의원에게 ‘포스트 디지털 세대’를 뜻하는 ‘P세대’를 강조하라고 한 것도 권씨였다. 그래도 권씨는 늘 아쉬움이 앞섰다. “막상 지역구에 가봐도 제가 나서서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그냥 멀찌감치 서서 마음 졸이고, 밤늦게 만나 ‘힘내라’고만 했죠.”

●● 국회의원 아내의 ‘가정교사’

▲ 지난 5월28일 두 사람은 여의도 국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권씨는 사실 결혼 후 회사에서 쏟아지는 시선이 부담스럽다. 사내에선 그가 누구의 남편인지 소문이 다 났다. “내가 느끼는 걸 얘기해도 정치인 누구의 생각이라 여기는 분이 있어요. 남들이 특정 정치인을 비판해도 말 한마디 하기가 조심스러워요.” 그는 “그래서 더 열심히 일하고 신중해진다”고 말했다.

결혼 후에도 남편 권씨는 늘 ‘정치인 김희정’을 돕고 있다. 대학에서 정보통신을 전공한 그는 김 의원의 가정교사이기도 하다. 1995년 한나라당에 입당하면서부터 ‘사이버’와 ‘인터넷’을 주 전공으로 삼은 김 의원은 소속 상임위도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다. “지난해만 해도 이쪽 분야의 전문 용어나 트렌드를 설명해줬어요. 사건·사안 별로는 아내가 더 많이 알지만요. 이제는 (김 의원이) 어엿한 과기정위 위원으로 자리잡은 것 아닌가요.”

권씨는 교통표지판 시스템이나 보육시설 등에 있어서 한국과 독일의 사례를 비교해 김 의원에게 아이디어를 주기도 한다. 지난 7월 독일에서 강연하게 된 아내를 위해 간단한 독일어 인사말을 이메일로 보내주기도 했다. 그는 “남편이 그런 도움이라도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래서인지 김 의원은 한·독 의원친선협회에 속해 있다.

권씨는 20년 가까이 독일 생활을 한 탓인지 한국 정치를 독일 정치와 비교하게 된다. “독일에선 사민당, 기민당이 한 개의 이름으로 40~50년씩 버텨요. 당의 성향에 맞는 정책, 그 정책에 힘을 실어줄 당권이 만들어지는 것 같은데 한국에선 당 특성보다는 인물 중심으로 정치가 흐르는 것 같아 조금 아쉬워요.”

●● 2세계획?… “능력 닿는데까지”

초등학교 때부터 정치인을 꿈꿨던 부인이 재선, 3선, 4선 하면서 계속 정치한다고 하면 남편 입장에서 어떨까. 그는 “당연히 도와야 한다”고 잘라말했다. “정치 하면 지긋지긋하지만 어쩌겠느냐”는 여타 다선의원의 부인들과는 좀 달랐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 저인데요. 오히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제한적이라 안달이 날 것 같아요. 제가 일선에 나가야 할 일만 안 만든다면 아내의 의견을 따라야죠.”

사실 출마야 수년 후의 문제이고 그보다 턱 앞에 닥친 문제가 따로 있다. 2세를 낳는 일이다. 일전에 김 의원은 출산 계획에 대해 “저출산 시대인데 능력 닿는 데까지 아이를 낳겠다”고 말했다. 김 의원과 남편 권씨는 나름의 출산계획을 잡고 있다. 물론 내년도 정치권 일정에 맞춘 것이다. 지방선거를 마치고 임신해 배가 부른 상황에서 정기국회를 시작하고, 임시국회 없이 국회가 쉴 때 출산한다는 것이다. 임신하면 비행기 대신 기차를 타야 하고 지방 다니기가 아무래도 수월치 않을 테니 최대한 지역구 갈 일이 적고 국회도 한산할 때 아이를 낳겠다는 작전이다.

물론 김 의원은 배부른 채 국회에 등원할 각오가 서 있다. 옆에 앉아있던 김 의원이 “배부른 임산부가 의정활동 하는 걸 보여주면 임신해 눈치보며 직장 다니는 여성에게 힘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덕분에 젊은 여성 국회의원이 결혼하고 배불러 국회에 다니고 아이를 낳아도, 앞으론 그다지 경천동지할 일은 아니게 될 것이다.

옆에 있던 권씨가 자랑스러운 듯 아내를 바라보다 거들었다. “나이와 세력, 권력을 따지는 정치권에서 여자이고 최연소인 사람이 지적하고 비판하면 깨끗한 정치 하는 데 작으나마 한몫을 하지 않을까 싶어요.”

권씨는 부인이 외압이나 여론에 영향받지 않는 소신 있는 정치인, 깨끗한 정치인이 되길 바란다. 밤늦게까지 인터넷 보고 자료 보다가 새벽잠 많은 사람이 어렵게 일어나는 걸 보면 안쓰럽기도 하다. 하지만 자랑스러울 때가 더 많다고 한다.

“천성적으로 (아내는) 정치를 재미있어 하고 즐거워하는 것 같아요. 그런 아내가 저도 자랑스럽고 좋아요. 뭐 아직 신혼이라 이렇게 말하는지는 몰라도 말이에요.(웃음) 좋아하는 일을 해야 본인이 기쁘고 본인이 기쁘면 가족이 기쁜 것 아니겠어요.”

황성혜 주간조선 기자(coby072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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