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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이 약해진 것 아니라, 여성이 강해진 것”
‘남성학’ 첫 도입… 강원관광대 정채기 교수
[전문가 진단] 무력한 아버지가 나약한 아들 만든다
▲ 정채기 교수는 우리나라에 남성학을 최초로 소개했다.
정채기 교수(강원관광대 교육학)는 1994년 한국에 ‘남성학’을 최초로 소개한 주인공이다. 그는 동시에 ‘딸사랑 아버지모임’의 공동대표로 한국 남성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남성학 학자가 보는 ‘부실한 남성’에 대한 진단은 어떤 것일까.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정 교수의 자택을 찾아 인터뷰했다. 정 교수는 사회 각계에서 여성이 약진하고 남성이 뒤처지는 상황에 대해 “남자는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는데 여자는 더 적극적, 공격적으로 변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남성이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 지금이 남성의 위기인가.

“우선 ‘남성시대가 가고 여성시대가 왔다’고 하는 것은 선언적이고 상징적인 표현이다. 여전히 한국 사회는 남성 위주의 사회고 여성은 사회적 약자이다. 그러나 예전에 비해 빠른 속도로 여성의 약진이 돋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일단 숫자에서 차이가 난다. 고시 합격률, 대기업 CEO 구성, 각종 시험 수석합격자 등에서 여성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남자는 예전과 같은 속도로 달리고 있는데 여성의 달리기 속도가 빨라진 것이다. 상징적·상대적 관점에서 볼 때 남성이 부실해졌다고 할 수 있다.”

- 왜 남자가 부실해진 것인가.

“일단 양적인 숫자가 바뀌었다. 고시에 응시하는 여성의 수가 늘었으니 합격률이 높아진 것이고 기업체에서 여성 입사가 늘었으니 CEO가 될 확률이 늘어난 것이다. 산술적으로 볼 때 남성은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었다. 또 질적인 면에서도 전통적인 남성상이 더 이상 경쟁력을 가지지 못한다.”

- 요즘 같은 시절엔 여성이 더 유리하다는 것인가.

“지금이 곡괭이질하는 농경시대도 아니고 공장에서 망치질하는 산업시대도 아닌데 힘쓰는 게 별 소용이 있겠는가. 똑똑한 머리로 컴퓨터 자판만 두드리면 못하는 게 없는 세상이다. 오히려 섬세하고 집중력을 기르도록 교육을 받은 여성이 훨씬 유리하다. 여기에 요즘 여성은 예전에 비해 훨씬 공격성이 강해졌다. 여성이라고 해서 참고 인내하는 것이 미덕인 시대는 이미 지났다.”

- 각종 시험에서 여성이 두각을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학에서 남학생과 여학생의 답안지를 보면 차이가 난다. 여학생 답안지에는 형광펜에 색깔있는 볼펜까지 다 동원된다. 글씨도 보기 좋다. 답안지 끝에 ‘교수님 강의 잘 받았습니다’까지 써놓는다. 남학생 답안지에는 이런 게 없다. 여학생의 지적 수준이나 논리력도 별 차이가 나지 않을 뿐더러 눈에 보기에도 좋으니 점수가 잘 나가는 것이다. 고시에까지 확장시키기는 무리가 있지만 이런 부분에서는 여성이 훨씬 더 경쟁력이 있다.”

- 왜 여성의 공격성이 강해졌는가.

“가족 구성과 상당한 관련이 있다. 요즘은 외동딸만 있는 집, 딸만 둘 있는 ‘딸딸이’ 집도 많다. 그런데 30~40대 엄마들은 딸에게 ‘절대 남자에게 지지 말라’고 어릴 때부터 교육을 시킨다. 젊은 엄마일수록 이런 성향은 강하다. 엄마들이 여성으로서 피해를 받아왔던 자신을 투영시키는 면도 있다. 강한 딸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얻는다. 또 자녀 수가 1~2명으로 줄어들면서 부모들은 경제적으로 아들 딸을 차별할 이유가 없어졌다. 딸에게도 전력을 다해 교육을 시킨다. 양적·질적인 면에서 여성의 경쟁력이 생긴다.”

- 여성만 강하게 변하고 남성은 변하지 않은 것인가.

“그렇지 않다. 남성에게는 예전에 추앙받던, 강하고 공격적인 ‘남성성’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 이유는 초등학교 교육을 보면 알 수 있다. 초등학교 선생님의 80~90%는 여성이다. 상당히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교단의 여성화가 남자 초등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 대학교는 남자 교수 비율이 90% 넘는 곳도 많다.

“이미 머리가 다 크고, 신체적으로 성장한 상황에서 남자 교수 많다고 큰 영향은 받지 않는다. 자아가 형성되기 전, 어릴수록 선생님으로부터 학생들은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여성을 이해하는 수준을 떠나 여성화되는 것이다.”

여성성·남성성 구분은 사회적인 것일 뿐

-선천적으로 남성이 강한 면도 있지 않은가. 미국 하버드대 로런스 서머스 총장도 남성에 비해 여성이 선천적으로 수학·과학적 재능이 떨어진다고 하지 않았는가.

“시대착오적인 발언이다. 어차피 여성성, 남성성의 구분은 사회적인 것일 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남자가 힘이 세다’는 말에도 의문이 간다. 진짜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확인해 보려면 에덴동산에서 해야 한다. 남성, 여성에 대한 교육은 인류의 역사를 통해 세습되고 유전된 측면이 강하다.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와 사회적 차이에 대한 논란은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남녀간의 생물학적 태생적 차이점도 사회적 교육에 의해 강화되는 측면이 강하다.”

- 남성학은 어떤 것인가.

“여성학과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남성성에 대한 연구, 남성으로서 짊어지고 있는 사회적 부담감, 사회적인 억압 등에 대해 학문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이미 유럽과 미국에서는 일반화 돼 있지만 유독 한국에서는 낯선 분야다. 최근에는 여성학, 남성학이 아닌 젠더(Gender)학으로 바뀌는 추세다.”

- 남성학에서 볼 때 한국 남성은 어떤 억압을 받고 있는 것인가.

“남녀평등이라고 하지만 아직까지 남성은 ‘브레드 위너(Bread Winner)’다. 밥벌이가 남자의 주임무라는 것이다. 꽃미남 신드롬도 있지만 정말 백수건달 꽃미남을 여자들이 좋아하겠는가. 밥벌이 못하는 꽃미남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 남성학 학자로서 우리나라 여성학에 대해 할 말은 없는가.

“우리나라 여성학은 이상하리 만큼 비판세력이 없다. 다른 나라에서는 여성학의 분파도 다양하고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 모두 공격적이고 전투적인 여성학이 주류를 이룬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별 차이를 찾지 못하겠다.”

- 왜 그런가.

“이화여대 중심의 여성학 학계의 문제다. 이화여대가 이 분야에서만큼은 한국 사회의 주류이고 다른 여자대학, 남녀공학 대학은 들러리에 불과하다. 여성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계보를 이루고 사제지간으로 엮여 있으니 제대로 된 비판이 가능하겠는가.”

- 이화여대 출신 여성학자들로부터 욕먹지 않겠는가.

“당연히 욕은 먹겠지만 사실이다.”

- 남녀가 평생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남성과 여성이 어떻게 상생해야 하는가.

“우선 남성이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여성이 남성의 영역으로 진출하는 만큼 남성이 고전적인 남성성에서 벗어나 여성의 영역으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여성이 남성 영역에 진출하면 ‘장하다’고 칭찬하고 남자가 여성 영역으로 가면 ‘신기하다’는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

- 여성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지금의 현실을 반영한 교육이 필요하다. 엄마들은 딸에게 ‘남자가 실업자가 되면 네가 생계를 짊어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교육을 해야 한다. 능력 없는 남자와는 이혼이 상책이라는 식은 곤란하다. 또 여성학도 변해야 한다. 아버지이자 아들인 남자에게도 해결책을 모색해주어야 한다. 항상 타도와 극복의 대상으로 남성을 바라보도록 하는 여성학은 위험하다. 그래야 학문적으로도 생활에서도 남녀가 상생할 수 있다.”

이석우 주간조선 기자(yep24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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