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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르포/ 지진해일 태국 현장] 바다 집시가 쓰나미 마을 살렸다
바다·영혼 숭배하는 '바다의 떠돌이' 모켄족장…
썰물 500m 기현상 보고 '해일 직감' 대피 지시

지난해 12월 26일 아침 10시께. 태국 서해안에 위치한 수린섬 본렉 해변에서 청소를 하고 있던 60세 노인 살라마 클라탈레이는 바닷물이 갑자기 500m 이상 썰물이 되는 기이한 현상을 목격했다. 보통 12월 말에는 조수의 차가 심하지 않고, 게다가 햇볕이 쨍쨍한 아침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본 그는 본능적으로 무언가 잘못됐다고 직감했다. 부랴부랴 마을 사람들을 부추켜 모두 산으로 도망가도록 했다.

▲ 모켄 족장 살라마 클라탈레이씨가 수린섬에 마련된 텐트안에서 해일이 밀려오던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 수린섬 본야이 해변에 마련된 새 집에 앉아있는 모켄족 모자.


갓난아기서부터 90세 노파까지 201명이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살라마의 말을 믿고 산등성이로 뛰어올라갔다. 10분 뒤 8m 높이의 해일이 마을을 덮치기 시작했다. 다리가 불구인 30대 후반의 청년을 제외하곤 마을 주민 전원이 동남아시아와 서아시아 전역을 쑥대밭으로 만든 지진해일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것이다!

같은 시각 태국의 푸껫섬. 아름다운 열대의 아침을 만끽하던 관광객들은 해변의 바닷물이 갑자기 1㎞ 정도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오히려 북유럽에서 온 관광객들은 썰물로 인해 각종 조가비와 산호초가 모래 위로 떠오르자 신기해하며 바다 안쪽으로 걸어나갔다. 이를 본 몇몇 일본 관광객이 "쓰나미(해일)"라고 외치며 도망갔지만 소용없었다. 잠시후 해일이 해변을 강타했다.



수린섬에 거주하던 모켄족 족장

이번 지진해일로 총 15만7000 명이 사망 혹은 실종됐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이 살라마처럼 쓰나미의 징후를 알고 행동에 옮겼더라면 어떠했을까? 살라마

▲ 모켄족 청년들이 본렉 해변을 떠나 새로운 터전인 본야이 해변으로 향하고 있다.



는 어떻게 대재앙을 알아차렸을까?

살라마와 주민들은 태국과 말레이시아 서쪽 해안, 즉 안다만 해역에서 고기를 낚으며 생계를 유지하는 '바다 집시(Sea Gypsy)’의 한 부족인 모켄(Moken)족에 속한다. 그리고 살라마는 수린섬에 거주하고 있던 모켄족의 족장이다.

일명 '차오 레이' 혹은 ‘차오 남’이라고도 불리는 바다 집시의 유래는 정확하지 않지만, 수백 년간 안다만 해역

▲ 한 마이타이족 남성이 부서진 배를 고치고 있다. 태국에 동화된 마이타이 바다 집시족은 이번 해일로 인해 고기잡이 배 200척 중 100척이 피해를 입었다.


에서 마치 육지의 유목민족처럼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 섬 저 섬 떠돌아다니는 집시족이며, 인종적으로는 오스트로네시안이나 말레이족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바다 집시의 피부는 일반 동남아시아인보다 훨씬 거무스름하며 갈색 머리를 지닌 경우가 많다. 태국의 바다 집시들은 여러 군데에 분포되어 있다. 안다만 해역의 수린섬을 비롯, ‘우락 라오이’족은 코 타리타오 국립공원 내 리페섬에, 또 거의 태국인에 동화된 ‘마이 타이’족이 시라이섬과 푸껫섬의 라와이 해변에 집중 거주하고 있다.



▲ 마이타이족 어린이들이 쓰나미가 할퀴고 지나간 푸켓섬 라와이 해변에서 뛰놀고 있다.


모켄족의 살라마는 해일에 대한 현상을 어렸을 때 부족의 어른들로부터 들어서 알았다고 했다. 선대로부터 이어온 간단한 민간 지식이 부족 전체의 목숨을 살린 것이다. 이제 살라마와 주민들은 초토화된 자신들의 터전 본렉 해변을 떠나 본야이 해변으로 이주할 예정이다. 현재 본렉 해변에는 부족들을 위한 텐트와 구호물품이 쌓여있지만 그곳으로부터 배로 5분 정도 떨어진 본야이 해변에는 10여가구가 새 집을 짓기에 여념이 없다. 젊은이처럼 건강한 살라마 족장은 손수 나룻배로 나무판을 운반, 공사현장에서 각종 지시를 내리기도 한다.

▲ 90세 노파 케베씨는 일생에 해일을 두번이나 겪고 살아남았다.


태국의 바다 집시들은 대부분 어업에 종사하고 원시적인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들이 보여준 해일 대처 능력은 아무리 발달한 과학기술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그것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라는 교훈을 남겨주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섬과 바다, 그리고 조상의 영혼을 숭배하는 바다 집시들의 지혜가 새로운 평가를 받고 있다.

수린(태국)=글·사진 정은진 WpN, OnAsia 소속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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