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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
1946년 11월 23일|남로당 결성

▲ 박한영
1946년 7월, 남북 양쪽에서 좌익세력의 새 판 짜기가 시작됐다. 구 소련 군정의 지시하에 북에서는 북조선공산당과 조선신민당을 합쳐 북조선노동당(북로당)을, 남에서는 조선공산당, 조선인민당, 남조선신민당 등을 한데 모아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을 결성하는 작업이 비밀리에 진행된 것이다. 북로당 결성은 순조롭게 진행돼 8월 28일 창당됐지만 남로당은 미 군정의 탄압과 3당간의 이해관계로 우여곡절을 겪었다. 남에서의 합당은 비밀리에 평양과 모스크바를 방문하고 돌아온 박헌영이 인민당 당수 여운형에게 합당문제를 꺼내고, 여운형이 이에 호응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그러나 합당을 계기로 내연해온 조선공산당 내부의 갈등이 폭발해 반(反)박헌영파와 친(親)박헌영파로 갈라지고 인민당과 신민당도 이에 영향받아 소극적으로 대처하면서 합당은 물건너가는 듯했다. 그러나 어차피 합당은 그들의 의지와는 무관한 일이었다. 결국 소련의 개입으로 1946년 11월 23일부터 이틀간 결성대회가 열렸고 이 자리에서 남로당 출범이 확정됐다. 소련 군정을 등에 업은 박헌영이 승리한 것이다.

1980년 11월 24일|YWCA 위장 결혼식

10ㆍ26 후, 정국은 한동안 ‘정중동(靜中動)’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유신체제가 무너질 것인지 아니면 유신 세력들의 발호로 다시 유신체제가 이어질 것인지 도무지 앞날을 예측할 수가 없었다. 재야인사들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비관론과 낙관론이 엇갈렸으나 11월 10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한 대통령 보궐선거 실시방침이 발표되고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이 후보로 나설 것이 분명해지면서 논의는 자연스럽게 비관론으로 기울었다. ‘유신잔재로 유신종식이 가능하다’는 논리의 허구성이 공감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곧 반정부 집회가 준비됐고, 계엄하에서 사람을 모으는 데는 결혼식이 제격이었다. 1979년 11월 24일 윤보선 함석헌 등 재야인사 1000여명이 서울 YWCA 강당에 모였다. 결혼식으로 가장한 ‘보궐선거저지 국민대회’였다. 이윽고 오후 5시45분, “신랑 입장”이라는 사회자의 개회선언을 신호로 대회장 곳곳에서 “유신잔당 물러가라”는 구호가 터져나왔다. 잡혀가는 사람이나 잡아가는 사람이나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튿날 새벽, 연행된 사람들이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끌려가 구타와 고문을 당하면서 상황이 분명해졌다. 낙관론은 역시 ‘헛된 기대’였다.

김정형 조선일보 정보자료실 기자(jh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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