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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속살 엿보기] ‘신경제중심가’ 테헤란로
부·명성·꿈 좇는 교통·금융·정보 중심지
벤처 탈출러시 속 “1~2년만 더 버티면 희망” 서울에서 외국(이란)의 수도 이름을 거리이름으로 정한 유일한 곳, 테헤란로(路). 이 거리처럼 최근 5~6년 사이 극심한 부침(浮沈)을 겪으며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곳도 없을 것이다. 1999~2000년 굴뚝 산업의 시대는 끝났다고 호언하던 젊은 벤처기업가들이 테헤란로를 휘저을 때 이 거리는 ‘테헤란 밸리’라는 별칭과 함께 모든 월급쟁이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단숨에 막대한 부(富)를 거머쥘 수 있는 엘도라도가 테헤란밸리였다. ●“벤처 열풍 땐 구름 위에 떠서 살았다”
▲ 선정릉에서 바라다 본 테헤란로
테헤란로는 보통 지하철 2호선 삼성역에서 강남역까지를 말하는데, 지하철 역으로 치면 삼성역, 선릉역, 역삼역, 강남역이다. 벤처기업들은 특히 역삼역과 선릉역 사이에 집중적으로 몰려 있었다. 테헤란로를 휩쓸었던 벤처 광풍(狂風)이 빠지기 시작한 것은 2000년 말~2001년 6월이다. IT산업의 침체로 벤처기업들이 하나둘씩 테헤란로를 떠나기 시작했고 탈출 러시는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벤처기업의 주요 자금 공급원인 코스닥시장은 붕괴 직전의 위기상황이다. 2002년 1월 400여개사에 이르던 테헤란로의 벤처기업 수는 지난 1월 말 현재 190여개사로 줄어들었다. 테헤란로를 떠난 벤처기업들은 주로 임대료가 싼 구로동 디지털산업단지로 옮겨가는 중이다. 테헤란로의 임대료면 구로동에서는 같은 크기의 사무실을 분양받을 수 있다고 한다. 벤처기업 TJV 대표 김진철(42)씨는 벤처의 거품이 꺼지기 시작할 때인 2001년 7월 아남타워에 입주했다. 증권사에서 10년을 일한 뒤 벤처에 뛰어든 김 대표는 “벤처 열풍이 불 때 벤처 기업가들은 ‘벤처도 기업’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구름 위에 떠서 지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어려운 시기지만 앞으로 1~2년만 잘 버텨내면 벤처기업이 살아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면서 “테헤란로는 여전히 교통·금융·정보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벤처 기업가들에게 매력적인 장소”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최근 계란 단백질과 생약 7종 활성추출물을 함유한 계란허브비누를 개발해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테헤란로는 마천루(摩天樓ㆍ스카이스크래퍼)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트레이드타워, 스타타워, 현대타워, 아남타워, K타워, 큰길타워, 신영타워, 다봉타워 등과 같은 ‘○○타워’라는 이름의 고층빌딩이 즐비하다. 과거 1970년대 서울의 스카이스크래퍼는 중구 소공동길이었다. 그래서 김포공항에서 시작한 세계 권투 챔피언 홍수환의 카 퍼레이드는 소공동길을 지나 시청앞 광장에 이르곤 했다. 카 퍼레이드 차량이 소공동 길에 들어서면 대한항공 빌딩 등의 옥상에서 색종이를 뿌리곤 했다. ●LG아트센터는 ‘테헤란로의 오아시스’ 멋진 건축미를 뽐내는 스타타워는 사연이 많은 빌딩이다. 처음에는 현대그룹 사옥으로 시공되었다가 다시 현대산업개발로 넘어갔고 호텔로 문을 열려고 했다가 일반 오피스 빌딩이 되었다. 테헤란로에서 20층 빌딩은 기본이다. 월드컵 4강 국민축제 카 퍼레이드는 삼성역 현대백화점 앞에서 시작했지만 얼마 못가서 인파에 떠밀려 중단한 채 시청 앞까지 달려야 했다.
▲ 삼성역 쪽에서 바라본 테헤란로 전경
삼성역에서부터 시작하면 무역센터, 포스코, 동부금융센터, 유니온스틸, 삼성SDS, 삼성멀티캠퍼스, 스타타워, 한솔빌딩, LG강남빌딩, 포스틸, 현대해상화재보험, 삼성역삼빌딩, 캠브리지빌딩 등이 건축미를 뽐내는 대표적인 스카이스크래퍼들이다. 건축가와 건축설계 사무소의 경연장이 바로 테헤란로다. 테헤란로를 걷다보면 다시 한번 삼성의 힘을 확인하게 된다. 금싸라기 같은 땅에 삼성그룹 소속 고층 빌딩들이 양 옆으로 한 블록마다 평균 한 개씩 솟아있기 때문이다. 테헤란로는 삼성그룹 계열사 본사 건물이 총출동한 현장이다. 테헤란로의 스카이스크래퍼들은 수천억원대의 값으로 인해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최근 들어서는 고층 빌딩의 1층 로비에 스타벅스와 같은 대형 커피전문점이 들어서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면도로로 들어서기만 하면 영 딴판이다.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밥집과 술집이 즐비하다. 대부분의 식당에서는 5000원이면 한 끼를 흡족하게 해결할 수 있다. 일천한 테헤란로 역사에서 2000년 3월은 대단히 의미 깊은 해다. LG아트센터가 역삼역 옆, 그러니까 테헤란로와 동호로가 교차하는 지점에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테헤란로는 지명 때문인지 아니면 길 양편의 고층빌딩으로 인해 계곡 바람이 불기 때문인지 스산하고 황량한 곳이다. 이런 곳에 들어선 LG아트센터는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다. LG아트센터는 재단법인 LG연암문화재단 소속이다. 구자경(具滋暻) 재단이사장은 개관사를 통해 “경제가 물질적인 측면에서 풍요로운 삶을 가꾸어가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면, 문화는 정신적인 측면에서 우리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면서 “지난 5년 간의 역사(役事)를 마치고 개관한 LG아트센터 상남홀은 기업이 문화 발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 시대의 소중한 문화를 우리 사회 구성원과 함께 나누려는 소망을 담은 무대”라고 말했다. LG아트센터는 조수미 리사이틀을 시작으로 ‘말괄량이 길들이기’(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 등을 개관 기념 작품으로 올렸다. LG아트센터가 그동안 자체 기획으로 올린 주요 공연을 살펴보면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와 화이트 오크 댄스 프로젝트, 스노 쇼,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상 2001년), 탈리아 극장 공연·토머스 판두르 연출의 ‘단테의 신곡 3부작-지옥 연옥과 천국’, 팻 메스니 그룹 공연(이상 2002년) 등이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멤버 중 ‘20년’을 부른 오마라 포로투온두는 2002년에 리사이틀을 가졌고, 이브라힘 페레는 2003년에 공연을 할 예정이다. 2003년에 공연될 주요 작품으로는 피나 바우시의 부퍼탈 탄츠 테아터가 만든 ‘마주르카 포고’, 메르세데스 소사(아르헨티나 민중 가수) 리사이틀 등이다. 이 중 주목할 작품은 ‘마주르카 포고’. 세계적인 무용가 피나 바우시가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을 무대로 만든 작품이다. LG아트센터측은 피나 바우시와 한국을 배경으로 작품을 만들어 2005년 공연을 하기로 계약을 마친 상태다. LG아트센터 홍보 마케팅 담당 최정휘씨는 “테헤란로는 문화의 불모지”라고 말한다. “강남역까지 나가지 않으면 서점 하나도 없는 곳이 테헤란로다. 가끔씩 LG아트센터가 섬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외벽에 발레 하는 장면이 담긴 대형 현수막을 걸어놓으면 가끔 사막 같은 황무지에 미술 작품을 덩그러니 설치해 놓은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LG아트센터는 메인로비에서 2001년부터 매월 한 번씩 주변 직장인을 위한 ‘런치 콘서트’를 열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삭막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직장인들에게 실내악 연주는 활력소를 주고 있다는 평가다. ●포스코 빌딩이 경계표(境界標) 역할 테헤란로와 삼성로가 만나는 지점에 있는 포스코빌딩은 테헤란로의 랜드마크, 즉 경계표(境界標)다. 1995년 7월에 준공된 포스코센터는 동관(29층)과 서관(19층)이 마주보고 있는 형태로 이른바 인텔리전트 빌딩의 효시다. 이를테면 포스코 사옥 각 층에는 기둥이 따로 없어 실내가 탁 트인 느낌을 준다. 고장력철강(TMCP鋼)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1995년 무너진 삼풍백화점은 백화점측에서 시야를 가로막는다며 중간 기둥을 마음대로 없앤 것이 대참사의 원인이었다. 실내 어느 곳의 카펫을 들춰도 전화선을 연결할 수 있고 유리창은 실외 온도와 햇빛의 강도에 따라 자동으로 햇볕을 조절한다. 진도 7의 지진에도 견디는 내진 구조로 설계되었다. 테헤란로에서 포스코센터의 의미는 빌딩의 첨단성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동관과 서관을 연결하면서 생긴 공간을 문화예술공간으로 만든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지하도와 연결된 지하 1층은 성큰 가든(sunken garden), 즉 침상원(沈床園:지면보다 한 층 낮은 정원)이다. 아트리움으로 불리는 1층 로비에서는 매월 무료 콘서트가 열린다. 클래식, 대중음악, 재즈, 전통음악 공연이 펼쳐진다. ‘금난새와 유라시안 필하모니’가 연주하는 클래식 공연은 격월로 연간 여섯 차례 열린다. 1000석의 청중을 수용할 수 있는 아트리움 콘서트 입장권 중 절반은 포스코 홈페이지를 통해 일반에 추첨 배분된다. 포스코센터는 사옥 앞 소광장의 특이한 조형물로 더 유명하다. 미국의 세계적인 작가 프랭크 스텔라의 작품인데, 작품명은 ‘꽃을 피우는 구조물’. 아트리움에는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3점이 있고, 2층에는 거대한 그림이 벽에 걸려 있다. 작품명은 ‘마르보티킨 둘다(Marbotikin Dulda)’. 인도양에 있다는 전설 속의 철(鐵)의 섬을 뜻한다. 이 그림 역시 프랭크 스텔라의 작품. 심미안이 부족한 일반인의 눈으로 볼 때는 옥외의 ‘꽃을 피우는 구조물’보다는 이 작품에서 오히려 감동을 받는다. 2층에 있는 포스코 아트 뮤지엄도 볼거리다. 입장료는 없다. 포스코센터는 휴식을 즐기면서 건축과 문화를 음미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포스코센터 옆은 2002년 12월에 문을 연 동부금융센터. ●성종과 계비 모신 ‘선릉’… 중종 모신 ‘정릉’ 포스코센터에서 최첨단의 건축과 예술을 즐겼다면 다리품을 팔아 선릉역으로 가보자. 선릉역에서 선릉로를 따라 강북 방향으로 5분여 걸어 올라가다보면 자그마한 동산이 나온다. 사적 199호 선정릉(宣靖陵)이다. 선릉은 조선왕조 9대 성종(成宗:1457~1494, 재위 25년)대왕의 능과 계비(繼妃) 정현왕후 윤씨(貞顯王后 尹氏:1462~1530)를 모신 능이다. 정릉은 제11대 중종대왕의 능이다. 중종은 성종의 둘째 아들로 1506년에 즉위하여 1544년 승하(乘下)한다. 단돈 400원(입장료)으로 21세기에서 15~16세기로의 시간여행이 이뤄진다. 성종이 죽기 2년 전인 1492년이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백인으로는 바이킹족 다음으로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해다. 성종은 재위 25년 간 ‘경국대전’을 완성하는 등 조선의 기틀을 다지는 수많은 치적을 남긴 임금이다.
▲ 포스코센터 1층 로비의 음악회(좌측),코엑스 몰의 아쿠아리움
녹음이 푸르른 봄, 여름의 선정릉은 꼬마들 소풍 장소로 유명하다. 선릉과 정릉으로 이어지는 산책길은 숲의 터널이다. 선정릉은 주변 시민들의 산책 코스로 사랑받고 있는데, 비가 오는 궂은날에도 이곳에 오면 산책하는 시민들을 만날 수 있다. 강남 한복판에 이런 동산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운치가 그만이다. 특히 선릉과 정릉의 봉분 너머로 보이는 테헤란로 고층 빌딩군(群)의 스카이라인은 그 자체로 예술이다. 15~16세기 허허벌판이나 다름없었을 이곳에 묘를 쓴 왕실 지관(地官)의 판단은 21세기 강남 시민들에게 커다란 축복이 되고 있다. 평민의 무덤은 후세 사람들에게 종종 혐오의 대상이 되곤 하지만 왕(王)과 비(妃)의 무덤은 후세 사람들에게 명소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세상사의 법칙인가. 테헤란로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곳은 삼성역과 강남역이다. 강남역 일대의 상권이 10대와 20대를 대상으로 지상(地上)으로 발전했다면 삼성역은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을 아우르며 지하(地下)로 퍼져나간다. 테헤란로는 역삼역에서 강남역으로 다가갈수록 삭막한 느낌을 조금씩 지워나간다. 강남대로 못미쳐 난 작은 길은 국기원길. 이 길에는 한국과학기술회관, 국립중앙도서관 학위논문관, 국기원 등이 자리하고 있다. 학위논문관에서는 서초동의 국립중앙도서관을 오가는 셔틀버스가 운행된다. 국기원의 일주문을 지나면 마당에는 ‘○○○태권도’라고 쓴 승합차들이 가득하다. 태권도 단증(段證) 심사를 받기 위해 온 태권도장 차량들이다. 테헤란로는 강남대로와 만나면서 한결 자유분방한 분위기로 바뀐다. 술집, 나이트클럽, 피부과, 성형외과, 어학원 등 젊은층을 대상으로 하는 업소들이 빌딩마다 경쟁적으로 들어서 있다. 삼성역의 코엑스 몰은 현대백화점과 인터콘티넨탈호텔과 지하로 연결되어 지하도시를 만들고 있다. 마치 캐나다 몬트리올 중심가의 거대한 지하도시를 연상케 한다. 몬트리올의 지하도시는 추위를 피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코엑스 몰은 철저하게 상업적 용도로 조성되었다. 코엑스 몰의 캐치프레이즈는 ‘끝이 없는 즐거움’. 이 말은 100% 사실이다. 초대형 서점 ‘반디 앤 루니스’부터 복합영화상영관 메가박스까지 없는 게 없다. 코엑스 몰에서는 지상으로 올라가지 않고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 코엑스 몰은 워낙 방대하다보니 서너 번 가서는 방위(方位) 감각을 유지할 수 없다. 안내 데스크가 세 곳이 있다는 사실이 코엑스 몰의 규모와 복잡함을 증명한다. 안내 데스크의 여직원은 잠시 쉴 틈도 없이 손님들로부터 비슷비슷한 질문을 받고 또 비슷비슷한 답변을 한다. 코엑스 몰이 몬트리올의 지하도시와 다른 점은 천장이 낮고 공기가 탁하다는 사실. 미로 같은 코엑스 몰을 돌아다니면서 기자는 불현듯 ‘만일 이곳에서 화재가 난다면 어떻게 될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도 출구를 찾기가 어려운데 만일 전원(電源)이 끊기고 유독 가스가 퍼진다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코엑스 몰의 환기 시설이 얼마나 열악한지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코엑스 몰의 정문을 나서는 순간 확인된다. 삼성동의 공기가 광릉수목원의 공기처럼 신선하게 느껴진다. 한국 경제의 신(新)중심가로 떠오른 테헤란로. 냉혹하고 비정한 자본주의 시장경제 법칙만이 지배하는 이곳의 ‘계곡 바람’은 유난히 매섭다. (조성관 주간조선 차장대우 mapl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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