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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순의 과학세상] 우리나라 전통 역법(曆法)
올해는 계미년(癸未年)으로 서양력으로는 2003년, 단기로는 4335년인 해이다. 설이 민족 명절이 되면서 양력 1월 1일은 이제 단순한 회계연도의 의미 이상을 가지기 힘들게 되었으며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전통 역법인 음력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1년은 통상 동지(冬至)에서 동지까지를 말하며 365.25일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달의 운행을 기준으로 하는 1삭망월(朔望月)은 29.5일인 반면에 태양의 운행을 기준으로 하는 1회귀년(回歸年)은 365.25년이다. 따라서 이 차이를 조절하기 위해 19년에 7번의 윤달을 두는 19년 7윤법이 통상적으로 쓰이고 있다. 음력을 태양·태음력이라고 하는 이유는 음력이 달의 운행을 기준으로 하지만 태양의 운행을 동시에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음력에서 말하는 24절기는 달의 운행을 기본으로 한 것이 아니라 태양의 움직임에 따른 것이다. 즉 음력에서는 채양의 황경(黃經)이 0도 15도 30도가 되는 식으로 15도씩 차이가 나는 곳마다 절기를 두고 있다. 이리하여 음력 달력에 있는 동지, 소한, 대한, 입춘, 우수, 경칩 등은 음력에 있는 양력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1일은 자, 축, 인, 묘로 12시로 나누었으며 자시(子時)는 한밤중이고 오시(午時)는 한낮에 해당하였다. 저녁에는 5경(更)을 두었는데 경의 길이는 계절에 따라 달랐다. 즉 밤이 짧은 여름의 경의 길이는 겨울의 경의 길이보다 짧았다. 이는 실용적인 측면에서 밤을 다스렸다는 이야기가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수준 높은 천문 관측이 행해졌다. 백제는 송(宋)나라의 원가력(元嘉曆)을 사용하였으며 역박사(曆博士), 천문박사(天文博士)로 하여금 일본에 천문서(天文書)를 전하였다. 특히 조선시대에 와서는 천문 역법이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1442년 세종 24년에 완성한 ‘칠정산(七政算)’을 들 수 있다. ‘칠정산’은 내편 3권과 외편 5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편은 정인지·정초·정흠지가 원의 곽수경이 만든 수시력을 완전히 소화해서 만든 것이며, 외편은 이순지·김담 등이 이슬람의 회회력을 소화해서 만든 것으로 그 우수함이 세계에도 자랑할 만한 것이었다. 당시에 달력은 태양과 달의 움직임뿐만이 아니라 수성·금성을 비롯한 5성(星), 일식, 월식 그리고 심지어는 태양이나 달이 5행성인 5성을 지나는 시각까지 정확하게 예측해야만 했다. 따라서 다른 나라 혹은 다른 지역의 달력을 그대로 사용할 수는 없었고 위치에 따라 그 값을 보정해주어야 하는데 이 작업은 달력을 새로 만드는 것만큼이나 고도의 지식과 기술력을 필요로 한 것이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세종 시대의 천문 역법은 세계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중국의 명대에 와서 마테오 리치와 아담 샬과 같은 선교사들에 의해서 서양의 천문학이 중국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이때 유입된 서양 천문학은 코페르니쿠스의 새로운 천문학이 아니라 주로 티코 브라헤의 관측치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즉 당시에 사용한 천문수치는 티코 브라헤의 관측치를 케플러가 편찬한 루돌프 표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이 서양 선교사들과 주로 서광계의 노력으로 중국에서는 ‘숭정역서(崇禎曆書)’가 만들어지게 된다. 하지만 명의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는 이 역서를 공포하지 못하고 죽고 말았고 대신 명을 멸망시킨 청조가 이 역법을 ‘서양신법역서(西洋新法曆書)’라는 이름으로 공포했다. 우리나라 조선 효종 때 김육의 건의로 시행한 역법인 시헌력(時憲曆)은 바로 이것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지금부터 100여년 전 조선의 고종 임금이 서양의 태양력을 쓰되 기존의 시헌력을 참용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우리나라에서 태양력의 역사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임경순/포항공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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