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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산 자의 회상과 죽은 자의 환상…멀홀랜드∼
'멀홀랜드 드라이브(Mulholland Drive·11월 30일 개봉)'는 제목 이전에 먼저 감독 데이비드 린치의 이름을 알 필요가 있다.
린치 영화는 이해하기 어렵다. 컬트 영화의 원조로 꼽히기도 하고 미국 아카데미상 후보에도 몇차례 올랐으며 칸영화제 단골 수상자라고는 하지만 그의 영화를 명확히 설명해내는 평론가나 관객은 별로 없다. 그것은 감독 본인의 말대로 그의 영화는 논리로 좇아가는 것이 아니라 직관으로 따라가야 공감이 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 린치 영화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을 이미지로 좇는다. 80년대만 해도 영화 관객 혹은 대중사회는 그의 영화가 낯설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유명해진 데이비드 린치를 즐기는 것은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다. 감각에만 몸을 맡기지 않고 이성적인 머리를 굴려도 린치 영화의 플롯은 설명된다. 린치가 초자연적인 감각을 드러내기 위해 겉포장으로 사용하는 '어지러운 줄거리'를 실타래 풀듯 풀어낼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이미 린치식 미스터리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린치 영화의 도입부는 십중팔구 어두운 외곽도로다. 주류영화에서 본 적 없는 미남 미녀의 주인공이 치정에 얽힌 듯한 살인사건에 말려든다. 사건의 결말을 좇는 주인공이 관객과 함께 만나는 것은 초자연적인 현상과 신비스러운 체험이다. 몽상과 현실이 중첩되며 그로테스크한 인물과 사건들이 삽화로 끼어든다. 그리고 끝맺음은 필연 미완의 미스터리다. 린치표 상품 중 대중적으로 알려진 작품은 '엘리펀트맨'(80), '블루벨벳'(86), '광란의 사랑'(90), '트윈 픽스'(92)가 있다. 소위 '컬트 영화' 매니아들은 데뷔작 '이레이저 헤드'(77)나 50분이 잘려나가 버린 SF영화 '사구'(84)에 더 열광하겠지만 무엇보다 린치를 설명하는 영화는 '트윈 픽스' 시리즈다. '트윈 픽스'가 본래 TV시리즈로 인기를 얻어 훗날 극장용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린치 영화의 난해함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알게 된다. 한편의 단막극으로 완결성을 갖는 동시에 시리즈로 이어지기 위해 미완의 연속성을 남겨야 하는 TV 시리즈의 속성에 린치 스타일은 딱 들어맞는다. 'X파일' 시리즈에 끝이 없듯 린치 영화의 수사에 결말은 없다. 일상적인 사건에 뭔가 신비스러운 원인이 숨겨져 있고 주인공과 함께 그것을 찾아나선 관객은 알듯 말듯 감질나는 단서들로 퍼즐 게임을 하다 결말 없이 다음주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트윈 픽스'처럼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TV시리즈를 염두에 두고 제작했다가 극장용 단막극으로 부활한 작품이다. 과감하게 이 미스터리 영화의 줄거리를 머리 속에 재구성해보자. 제1막. LA에서 산타모니카 사이에 있는 도로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어느날 밤 차 사고가 일어난다. 가까스로 살아난 리타(로라 해링)는 기억상실증에 걸려 근처 빌라에 숨어든다. 할리우드 스타의 꿈을 안고 시골에서 올라온 베티(나오미 왓츠)는 숙모의 빌라에서 리타를 발견하고 그녀의 기억을 찾아주기 위해 오디션도 마다하고 함께 단서를 찾아나선다. 제2막. 유망한 젊은 감독 아담 케셔(저스틴 테럭스)는 엉뚱한 여배우를 캐스팅하라는 마피아의 압력을 거절하자 쫓기는 신세가 된다. 마누라는 수리공과 놀아나고 신용카드까지 정지돼 개인 파산 상태까지 이르자 마피아와 타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제3막. 스타급 여배우 카밀라(로라 해링 1인 2역)와 신인배우 다이안(나오미 왓츠 1인 2역)은 서로 사랑하는 동성애자였다. 카밀라는 자신이 출연하는 모든 영화에 다이안을 끌어주었다. 카밀라가 아담 케셔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아담과 연인이 되어 다이안에게 결별을 선언하자 다이안의 삶은 엉망이 된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애증과 복수의 화신이 된 다이안은 청부살인 업자에게 카밀라를 죽여달라고 요청한다. 제4막은 다이안의 파멸과 단숨에 사건의 발단으로 돌아가는 반전이므로 해설을 피하자. 실제 이 영화에서 막이 구별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꿈에서 본 일이 현실에서 재현되자 경악하는 에피소드는 현실과 몽상의 경계를 넘나들어야 한다는 감독의 복선이다. 이 장면에서 등장한 인물들은 주인공들과 아무런 관련없는 단역이어서 의아하겠지만 이들은 아마도 시리즈를 만들었다면 회마다 등장하는 인물들이 아니었을까?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파란색 상자와 파란색 열쇠를 통해 시간과 공간을 넘나든다는 사실만 이해하면 리타와 베티의 관계는 사실 카밀라와 다이안이 처음 만났을 때를 회상하는 것에 다름아님을 알 수 있다. 다만 그것은 죽은 자(다이안)의 환상일 수도 있고 산 자(카밀라)의 회상일 수도 있다. 그래서 같은 배우가 1인 2역을 하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를 등장인물의 이름만 바꾸어 모두 현재형으로 묘사해 각 에피소드가 별개인 것처럼 혼선을 초래함으로써 관객은 미스터리에 빠진다. 2차원적으로 돌아오면 플롯은 단순하다. 이 영화의 단선적인 줄거리는 여배우 카밀라와 다이안의 애증과 파멸이다. 하지만 머리로 데이비드 린치를 재구성하는 일은 허무하기 그지 없다. 멀홀랜드 드라이브 혹은 어느 도시의 어두운 도로에서 차를 몰다가 문득 인간사의 사랑과 욕망을 묘사하기 어려운 삽화처럼 느낀다면 이 영화에 제대로 홀린 것이다. 린치의 영화는 난해한 것이 아니라 신비스러운 것이다. 노골적이고 자극적인 장면도 별로 없으면서 막상 사람을 이토록 긴장시키는 서스펜스 솜씨는 히치코크를 연상케 한다. 강렬한 컬러로 채색한 히치코크를. 2001년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 ( 이성복 디지틀조선일보 조선닷컴 편집국 부국장 sblee@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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